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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164…1929년 11월 24일 (15)

입력 | 2002-11-03 18:11:00


그녀의 입을 손바닥으로 막는 순간, 시커먼 혼이 시뻘건 내장 속으로 툭 떨어지는 것을 느꼈다. 요동치는 몸을 억지로 누르고 속옷을 끌어내려 속바지와 한꺼번에 벗겼다. 딱 붙이고 있는 무릎을 두 손으로 잡고 좌우로 벌려 다리 사이로 허리를 밀어 넣기는 했는데, 어디에다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정신이 없었다. 근육이란 모든 근육이 움츠러들어 있었다. 그리고 정신을 차렸을 때는 안에 있었다, 안에! 하지만 몇 번을 움직여도 깊숙이 들어가지 않았다. 달리기 시작할 때처럼 심호흡을 하고 과감하게 움직이자 짓뭉개진 비명이 으-음하고 목에 닿았다. 나는 손바닥을 그녀의 입에서 떼고 두 팔꿈치로 자신의 몸무게를 받치고 세게 빠르게 움직였다.

빤 자국이 멍처럼 남아 있는 젖가슴, 벌린 채 움직이지 않는 다리, 긁힌 상처가 나 있는 허벅지, 풀을 움켜쥐고 있는 오른 손, 버선이 벗겨진 왼발가락이 부자연스러울만큼 뒤집어져 있다, 마치 죽은 사람 같다. 걱정스러워 왼가슴에 귀를 대어 보았다. 툭툭툭툭툭툭, 다행이다, 살아 있다, 툭툭툭툭툭툭, 나는 그녀의 머리칼을 쓰다듬으면서 귀에 입맞춤했다.

괜찮나?

…싫어예.

미안타.

얼매나 아팠는지.

…미안타….

…얼매나 아팠는지….

그녀는 눈을 뜨고 안저고리의 깃을 여미고 몸을 일으켰다.

알라 생기면 우짭니까?

…기뻐해야재.

처음이었어예.

나도 처음이었다. 그란데, 어쩌지 그 치마는.

피는 물로 씻으면 지워지니까 괜찮지만서도, 나…언니한테 들은 얘기가 있어서. 물로 잘 씻으면 알라 안 생긴다고. 좀 씻고 올랍니다.

그녀가 아이처럼 재빨리 오른발에 남아 있는 버선마저 벗고 걷기 시작해 나도 서둘러 속바지만 입고 뒤를 따랐다.

그녀는 치마를 입은 채로 첨벙첨벙 강물로 들어가, 허리춤까지 물에 잠기자 흐름을 등지고 멈췄다. 파란 색 치마가 물의 흐름을 따라 살랑살랑, 물과 함께 흐르지 못하는 것을 안타까워하듯 살랑살랑, 눈을 감자 눈꺼풀 어둠 속으로 빛의 원이 몇 개나 떠올랐다.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