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9년 7월 14일 파리 시민들이 봉기해 바스티유 감옥을 습격하고 점거했다. 프랑스 혁명의 막이 오른 것이다. 14세기에 축조했다는 이 감옥은 주변에 호(濠)를 끼고 있는 견고한 요새였다. 국가의 안위를 해쳤다고 간주된 국사범과 정치범이 감금된 요새를 샅샅이 뒤졌는데도 수용 중인 죄수는 16명이었다.
대혁명이 시작된 날 시민이 습격했던 바스티유 감옥에 수용되어 있던 중범(重犯)들이 대충 얼마나 되리라 생각하느냐고 학생들에게 상상력 놀이를 시킨 적이 있다. 물론 그 따위를 역사시간에 가르칠 리 없고 가르칠 필요도 없다. 프랑스인 사이에서도 알아맞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까 상상력 놀이로서는 적격이다.
▼´상상과 망각´ 난무하는 정치판▼
3만명에서 5000명에 이르는 다양한 답변이 나왔다. 숫자를 대규모로 잡는 것이 공통점이었다. 구체제의 전제정치, 역사적인 프랑스대혁명, 성난 파리시민들의 공격 등이 상상력에 환기하는 것은 무엇인가 엄청나게 큰 것이다. 따라서 감옥도 죄수로 가득 차 있었을 것으로 추측하게 된다. 그래야 대혁명에 어울리는 규모가 되는 셈이다.
권태웅의 동요집 ‘감자꽃’은 광복 직후에 나온 아동문학의 귀중한 유산이다. 근자에 나온 이 책의 증보판에는 ‘안테나’란 동요가 수록되어 있다. “멀리서도 잘 뵈는 기단 대나무/오늘은 무슨 방송 들어오는지/까치가 한 마리 듣고 앉았다”란 내용이다. 그런데 곁들인 삽화에는 라디오가 아닌 TV 안테나가 그려져 있다. 상상력이란 이렇게 기성적인 관념이나 지식에 의해 규정되고 예단되게 마련이다.
살아보지 않은 시대에 대해 사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나 이미지는 위에서 보듯 자의적이고 오도(誤導)된 상상력의 구축물인 경우가 많다. “윤동주 같은 저항시인이 왜 창씨개명을 했나요?”란 학생의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윤동주를 저항시인이라고 단선적으로 정의하는 것도 문제지만, 이 물음 속에는 창씨개명은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선택의 문제였다는 투의 과거 이해가 깔려 있다.
일제강점기 말의 창씨개명은 공출(供出)이나 남자머리 삭발이나 학교에서의 일어 사용과 마찬가지로, 요즘말로 ‘선택’ 아닌 ‘필수’였다. 그것을 부정하는 것은 일제시대를 미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창씨개명을 끝내 거부한 집안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고유의 성명을 유지한 것이 떳떳한 행적의 징표가 되지는 않는다. 겪어보지 못한 시대를 자의적인 상상력으로 채색하고 구축하는 것은 올바른 현실 이해에 결정적 장애 요인이 된다. 부지중에 역사 왜곡으로 치닫게 마련이다.
한편 이 못지않게 현실 이해를 저해하는 것은 삶의 현실을 오직 정치적 차원으로 단선(單線) 환원시키는 것이다. 사람이 빵만으로 사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전성기의 트로츠키가 토로했듯이, 사람이 정치만으로 사는 것도 아니다. 현실을 정치로 단선 환원시키고 그 정치를 다시 선전으로 단선 환원시키는 것이 도식적 교조적인 정치문학이나 정치소설의 악덕이요, 폐습이다. 거기에 보이는 것은 사태의 극단적 단순화이고, 사태의 극단적 단순화는 다름 아닌 폭력의 논리이다. 삶의 현장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좋은 지도자 골라낼 준비 됐나▼
적정한 현실 파악을 가로막는 것은 그밖에도 수두룩하다. 가까운 과거에 대한 집단적 기억상실도 큰 문제다. 불과 한 세대 전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리거나 혼동하고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정치인의 상습적 말 뒤집기나 후안무치한 식언이 끊이지 않고 번창하며 실효를 거두는 것은 어처구니없는 집단적 기억상실의 공간에서다. 그렇기 때문에 ‘권력에 대한 인간의 투쟁은 망각에 대한 기억의 투쟁’이란 말도 생겨나는 것이다.
정치의 계절이 되어 갖가지 언설이 난무하고 있다. 사실 여부에 대한 검토 없는 마구잡이 상상력의 구축물, 역사 왜곡이나 사태의 단순화를 통한 선동적 수사, 상습적인 말 뒤집기 등을 가려내어 ‘정책’과 차별화하는 것이 시민의 의무일 것이다. 어느 국민이나 자기 분수에 걸맞은 지도자를 갖게 된다는 말에 지금 우리는 참담한 심정이 되어 있지 않은가.
유종호 연세대 석좌교수·영문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