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실시된 터키 총선에서 이슬람계 정당인 정의발전당(AKP)이 집권당을 누르고 압승을 거둬 터키의 향후 정국에 일대 변혁이 예고되고 있다. AKP의 타입 에르도한 당수(사진)는 압승을 거둔 직후 “유엔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는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슬람계 정당 압승〓AKP는 이번 총선에서 34.2%를 얻어 뷜렌트 에제비트 현 총리가 이끄는 민주좌익당(DSP) 등 3개 정당 연정을 눌렀다. AKP는 유권자 과반수 득표를 얻지 못했지만 다수당에 의석을 몰아주는 터키 의회법에 따라 전체 550석 가운데 362석을 차지하게 됐다. 이슬람계 정당이 터키 집권당이 되기는 96년에 이어 두 번째다.
AKP를 이끌어온 에르도한 당수는 그동안 반(反)서방 이슬람 근본주의 입장을 표방해온 전력이 있다.
그는 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후 터키의 유럽연합(EU) 가입 반대 및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주장해 군부와 알력을 빚었다. 그가 소속했던 복지당(WP)이 96년 이슬람 정당으로서는 터키 사상 처음 집권했으나 역시 군부와의 갈등으로 97년 퇴진했다.
그는 98년 “이슬람 사원은 우리의 병영”이라는 내용의 시를 공개 낭독해 과격 이슬람교 선동 혐의로 4개월간 복역했다. 이후 그는 ‘온건 이미지’ 구축에 나섰으나 군부 등 제도권은 그가 실제로는 이슬람 근본주의를 버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가 부인과 두 딸에게 여전히 차도르를 입히며 술 판매와 피임 등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감 전력 때문에 그는 이번에 출마하지 못했고 총리가 될 수 없다. 총리는 당내 유력 인사들 가운데 나올 예정이다.
▽서방의 우려〓중동 내 미국의 제1맹방이자 군사 기지를 제공하고 있는 터키에 이슬람계 집권당이 등장함으로써 미국의 대이라크 전선 구축에도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크다고 워싱턴포스트가 전했다.
에르도한 당수는 4일 “유엔의 사전승인을 받지 않은 이라크 공격에 반대한다”며 “미국은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증거가 없는 한 이라크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앞서 그는 3일 서방 언론과의 회견에서 “EU 가입을 최우선으로 삼고 미국 및 국제통화기금(IMF)과의 유대 관계 역시 변함이 없을 것”이라고 밝혀 앞으로 터키 외교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나갈지 관심을 끌고 있다.
권기태기자 kk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