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를 마친 뒤 선배 감독들이 ‘잘 가르쳤네’ 하고 어깨를 두드려줄 때 비로소 안도의 한 숨을 쉽니다”.
코리아텐더 푸르미가 2002∼2003애니콜 프로농구 시즌 초반 공동 3위(3승2패)로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두고 있다.
난파 일보 직전의 코리아텐더호를 이끌고 있는 이상윤 감독대행(40·사진). 그는 “전형수가 있으면 6강은 확실했다. 그러나 그가 없는 지금도 6강은 자신한다”고 말했다.
전형수는 시즌 개막 직전 모비스 오토몬스로 트레이드됐다. 시즌을 앞두고 전력의 핵을 다른 팀으로 넘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 그러나 구단의 어려운 사정을 알고 있는 터이라 항의할 수도 없었다.
“트레이드 이후 남은 선수들이 똘똘 뭉쳤습니다. 우리 전력으로 한 게임 이기기가 쉽지는 않지만 다른 팀도 우리를 쉽게 이기지는 못할 겁니다”.
전형수를 넘기면서 받은 2억5000만원 덕에 급한 불은 껐다. 원정경기에 나서면 다른 팀처럼 특급호텔에 묵고 식사도 호텔 안에서 해결한다. 월급도 제때에 나온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다. 돈이 떨어지면 또 대책이 없다. 구단측에서는 다음달 3일 연고지인 여수가 세계박람회 개최지로 결정되면 형편이 나아질 것이라고 하지만 선수들은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지더라도 놀라지 않기로 약속했다. 팀이 해체되든 다른 회사에 인수되든 함께 있을 수 있는 마지막 그날까지 최선을 다하자는 약속을 지킬 뿐이다.
이 감독이 모든 일을 선수들과 의논하는 것도 이 때문. 코치부터 감독 역할까지 혼자 하는 바람에 의논할 상대는 선수들 밖에 없다. 그래서 이 감독은 경기를 앞두고 가지는 미팅에서 작전을 지시한 뒤 언제나 “내가 놓친게 없느냐”고 묻는다. 처음에는 아무 말 없던 선수들이 이제는 감독에게 할 얘기를 미리 준비해서 나온다.
“우리 팀은 투혼이란 투혼은 모두 모아놓았다고 할 만큼 정신력 만큼은 최고입니다. 막판까지 체력만 따라주면 그동안 한 번도 이루지 못한 6강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겁니다”.
군 복무 당시 불의의 사고로 선수생활을 중단한 뒤 삼성전자 영업사원을 거쳐 지난해부터 새로 맞은 이감독의 지도자 생활은 가시밭길의 연속. 이런 이 감독에게 요즘 가장 절실한 말이 바로 ‘인생지사 새옹지마(人生之事 塞翁之馬)’가 아닐까.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