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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프리즘]박세일/대선 이후를 준비하라

입력 | 2002-11-05 18:21:00


시간은 물 흐르듯 지나간다. 40여일 후면 앞으로 우리나라를 5년간 책임질 새로운 대통령이 결정된다. 누가 다음의 대통령이 될 것인가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국민적 관점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다음 대통령이 국정운영을 얼마나 성공적으로 잘 수행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어느 때나 대통령의 국정운영 성공은 국민에게 축복이었고, 대통령의 실패는 국민의 불행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권에서는 ‘누가 되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이다. 그러나 국민에게는 다음 대통령이 ‘얼마나 잘할까’가 더 큰 관심이고 걱정이다. 과연 얼마나 국민을 편안하게 해줄 것인가. 솔직히 말해 선거 후가 더 걱정이다. 다음 대통령이 해이해진 사회기강을 바로 잡고, 분열된 민심을 통합하고, 난마같이 얽힌 산적한 민생문제들을 잘 풀어갈 수 있을지 기대도 많지만 걱정이 더 많다.

▼취임뒤 6개월이 5년 좌우해▼

국민은 다음 대통령은 누가 되든 반드시 성공하는 대통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를 위해 지금부터라도 각 대선 후보캠프는 대선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 특히 대선 후 대통령당선자로서의 2개월과 새 정부 등장 후 6개월이 대단히 중요하다. 이때야말로 차기 정부의 성공 여부가 좌우되는 가장 중요한 기간이다. 전(前) 정부와의 관계 설정, 대북(對北) 및 주변 강대국들과의 관계조정이 이 시기에 이루어진다. 새로운 청와대 조직개편과 비서관 인사, 그리고 총리와 내각 등 국정의 핵심인사가 정해진다. 또한 주요 국정과제가 선택되고 우선순위가 정해지고 그 추진체계가 확정된다. 한마디로 이 기간에 새 정부의 ‘기본틀’이 결정되고 앞으로 5년간 국정운영의 기조가 정해진다. 따라서 이때 어떤 철학과 원칙을 가지고 조직 인사 정책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새 대통령의 미래, 국정운영의 성공 여부가 좌우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대통령이 이 중요한 시기를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맞게 된다는 데 있다. 격렬한 선거전을 지나 심신이 지칠 대로 지친 상태에서, 또한 당선의 기쁨과 대통령 당선자라고 하는 특이한 지위에서 오는 흥분과 혼란 속에서, 많은 중요 결정을 내려야 한다.반면 이 시기가 실은 새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지식과 정보, 이해와 경험이 가장 적은 시기이다. 가장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가장 중요한 결정들을 내려야 하는 것이다. 더욱 역설적인 것은 바로 이 시기야말로 새 대통령의 정치적 힘과 영향력은 가장 클 때이고, 야당과 언론의 협조는 물론 국민적 지지와 관심도 가장 높을 때이다. 국민 모두가 그의 일거수 일투족을 지켜본다. 따라서 이때가 새로운 국가비전을 제시하고 그동안 역대 정부가 추진하기 어려웠던 국정 개혁과제를 과감하게 추진하기에는 가장 적기(適期)다. 따라서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이때를 철저히 준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각 대선후보들이 가능한 한 일찍 ‘국정인수 준비팀’을 만들어야 한다. 물론 형식적으로 거대하게 만들 필요는 없다. 소규모라도 내실 있게 만들어 철저히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혹자는 ‘떡 줄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 아니냐’고 냉소할지 모르나, 그러한 차원의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의 대통령학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이 국정인수 준비팀의 가동이 가능한 한 빠를수록 좋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경우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확정된 순간부터 선거대책위원회 구성과 동시에 별도의 국정인수 준비팀을 가동시켰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11월인데 인수 준비팀은 선대위와 더불어 6월부터 구성되었다. 비교적 늦게 시작했다는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경우도 선거 3개월 전인 8월부터 인수 준비팀을 조직해 주7일 하루 14시간씩 일했다.

▼국정인수 준비팀 속히 가동을▼

한국의 후보들이 대통령이 되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는 것은 알고 있으나 대선 후 국정운영의 성공을 위해 얼마나 ‘책임 있는 준비’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만에 하나라도 실패한 대통령이 되어도 좋으니 우선 당선만 되고 보자는 생각이라면 이는 국민과 역사에 대해 너무나 무책임한 태도이다. 대통령의 실패는 개인의 실패가 아니고 ‘한 시대의 실패’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더 이상 실패할 여유가 없다.

박세일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법 경제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