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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마당]김순응/´미술시장 침체´ 구경만 할건가

입력 | 2002-11-06 18:00:00


얼마 전 강원 양구군에 박수근미술관을 개관한 경사가 있었다. 문화적으로 척박한 우리 토양에서 이만한 일을 일궈낸 양구군과 박수근선양사업추진위원회에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국민화가 박수근을 기리는 미술관에 그의 대표작은커녕 유화가 한 점도 없다는 건 후진적인 우리 문화의 적나라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넘어 서글프기까지 하다.

필자의 좁은 견문으로는 세계 어느 나라에도 이런 미술관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자 올림픽과 월드컵을 치른 우리도 정부 차원에서 문화정책에 대한 총체적인 점검에 나설 때가 되지 않았을까. 선진국에서의 문화에 대한 정부 당국의 세심한 배려를 언제까지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미국의 경우를 보자. 1917년 연방 세법을 마련해 미술관에 기부금을 내거나 미술품을 기증할 경우 그만큼 세금을 감면해준다. 이에 힘입어 미국에는 1차 세계대전 직후에만 200개가 넘는 미술관이 생겼다. 현재 뉴욕 메트로폴리탄미술관에 걸려 있는 렘브란트의 그림들과 반 고흐의 걸작들은 다 이렇게 해서 소장한 그림들이다. 미국 유수의 공공 미술관에 걸린 상당수의 걸작도 기증받은 작품들이다.

이렇게 70년간 유지돼온 세제혜택이 ‘부유층에 대한 특혜’라는 일부 여론에 밀려 1986년 레이건 정부가 단행한 세법 개정에 따라 한때 중단된 적이 있다. 미국의 부자들은 자기들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행동하는 대표적인 ‘경제인(Homo Economicus)’이다. 예상대로 미술품 기증은 뚝 끊겼다. 그러나 여론에 밀려 결국 1993년 9월 미술관에 기증한 예술품의 평가액만큼 세금을 감면해주는 연방법안이 의회를 통과했다. 이후 미술관에 기증하는 작품 수가 다시 늘어났음은 물론이다.

우리도 부자들의 이기심만을 탓하고, 입으로만 기부문화를 이뤄나가자고 외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기부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는 거저 실현되는 것이 아니다.

미술이 뭐 그리 중요하냐, 먹고사는 문제와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 것이다. 굳이 경제와 연결 지어 득실을 따져야 한다면, 앞으로 점점 더 문화와 예술이 국부(國富)의 창출에 기여하는 몫이 커질 것이라고 대답하는 수밖에 없다. 디자인이 경쟁력이라 하고, 패션을 통해 수출을 늘려야 한다고들 얘기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이 결국은 순수미술의 발전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알아야 할 것이다. 패션으로 세계를 지배하고 엄청난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 프랑스와 이탈리아도 유구한 순수미술의 역사를 그 바탕에 깔고 있다.

미감(美感)은 하루아침에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기초과학 없이 응용과학이 발전할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부동산시장이나 주식시장이 침체되면 온갖 부양책을 내놓는다. 하지만 미술시장 부양책이란 말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젊고 유망한 작가들이 작품만으로 생계가 어려워 화업(畵業)을 중단하는 것은 국가적으로도 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눈에 보이는 것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김순응 서울옥션 대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