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초 유상증자를 통해 약 38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한 벤처기업 새롬기술이 증자 직전 회계장부를 조작한 뒤 증자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돼 검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지검 형사9부는 7일 "새롬기술의 1999년 사업보고서에 분식회계 혐의가 있어 이 회사의 회계 담당자 등을 불러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새롬기술 관계자도 본보와의 전화통화에서 "당시 재고자산 일부를 매출로 잡아 매출과 이익을 늘린 적이 있다"며 분식 사실을 인정했다.
▽유상증자는 사기극?= 검찰 수사의 초점은 새롬기술이 1999회계연도 재무제표를 만들 때 재고자산 약 150억원 가량을 매출로 둔갑시켰느냐는 데 맞춰져 있다.
새롬기술은 1999년 약 100억원 적자를 냈으나 증자를 앞두고 부실재고를 외상으로 판매한 것처럼 꾸며 매출을 150억원 가량 부풀리고 이익도 10억원 흑자를 낸 것으로 장부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실제 새롬기술은 2000년 3월 금융감독원에 1999회계연도 실적을 매출 262억원, 순이익 10억5600만원으로 보고했다.
이에 대해 새롬기술 관계자는 "액수가 150억원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재고자산 일부를 매출로 꾸민 것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그는 "결산실적을 발표한 것은 3월이고 유상증자는 그보다 빠른 2월에 완료돼 증자를 위해 회계장부를 꾸민 것은 아니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당시에는 기업 연간 실적이 1월말이면 알만한 사람들에게 미리 다 알려졌다"며 "2월 증자에 참가한 주주들 대부분이 새롬기술의 분식회계 장부를 믿고 돈을 댔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경영권 다툼= 새롬기술은 최근 오상수 현 사장과 관계사인 새롬벤처투자 홍기태 사장이 8월부터 치열한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회사. 새롬기술은 2000년 유상증자 때 받은 돈 가운데 약 1700억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최근 경영권 분쟁도 이 돈의 소유권 다툼이라는 게 증권가의 해석.
새롬기술 관계자는 7일 이번 검찰 수사에 대해 "홍 사장 측이 현 경영진을 흔들기 위해 분식회계 의혹을 고의로 검찰에 알렸다"고 주장했다. 반면 홍 사장 측인 새롬벤처투자 박원태 전무는 "새롬이 분식회계로 검찰 조사를 받는다는 소문은 들었으나 구체적인 사실은 7일 처음 알았다"고 반박했다.
분식회계 의혹이 어떤 경로로 불거졌건 회사의 치명적인 과거 치부까지 드러내면서 진행되는 양측의 경영권 분쟁은 코스닥시장과 벤처업계에 큰 상처로 남을 전망.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분식회계가 사실이라면 사장 최대였던 새롬의 유상증자가 일종의 사기였음이 밝혀지는 셈"이라며 "이 상태에서 누가 회사를 차지하건 절대 떳떳이 경영권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