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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r양의 대인관계성공학]폭탄주 심리학

입력 | 2002-11-07 16:54:00


수줍음 많고 내성적인 대신, 얼렁뚱땅 대충 넘어가는 걸 못 견디는 김모씨. 남들에게 내색은 안 하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괴로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중에서도 그를 가장 힘들게 하는 건 회사 직원들과 갖는 술자리다. 얼마 전 부서가 바뀌면서 더 큰 곤욕을 치르고 있다.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혼자 살고 있는 그는 술도 혼자서 조용히 마시는 걸 좋아한다. 대개는 집에 들어갈 때 캔맥주 한 팩 사들고 가서 극장에서 못 본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하면서 마신다. 더러는 한적한 바에서 분위기 잡으며 마시는 때도 있지만, 역시 혼자 아니면, 친한 친구나 한 사람 불러내는 정도다.

그러나 회사에서 회식을 하거나 부서 사람들끼리 어울릴 땐 얘기가 다르다. 대개는 일단 시끌벅적 판부터 벌여놓고 보는 게 그런 자리 아닌가. 물론 그는 그런 자리에서 뒤로 빼거나 할 만큼 사회생활에 어둡지 않다. 남들 하는 만큼 먹고 마시고 논다. 그때마다 늘 자기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대역을 하는 것 같은 게 문제라면 문제였다.

그러던 중 이번에 옮겨간 부서의 팀장은 폭탄주 애호가였다. 이미 그의 술자리 버릇은 사내에서 유명한 터였다. 두주불사인 데다가 폭탄주까지 마셔대면서도 정작 본인은 끄떡도 없다고 했다.

“인간도 아니야. 아마 술 마시는 걸로 전쟁하는 나라 있으면, 혼자서도 다 커버할 걸. 이건 술 마시는 전투 병기라고. 남들 다 꼭지 돌아 나가떨어지면 그 때 그 인간 얼굴 봐야 해. 마치 지가 이번에도 대접전에서 이겼다는 듯이 씩 웃는데, 그거 보고 있으면 정말 소름끼친다니까.”

실감나게 진저리까지 치며 한 동료가 들려준 말이다. 얼마 후 그 역시 팀장과 술자리를 함께 하며 동료의 말을 눈으로 확인할 기회를 가졌다. 그리고 문득 알고 싶어졌다. 대체 폭탄주는 왜 마시는 거야!

얼핏 호기로운 영웅심리에서 비롯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게 폭탄주를 마시는 사람들의 심리다. 우린 누구나 술자리에서조차 실수에 대한 불안감을 갖고 있다. 그럴 때 좀 더 빨리, 쉽게 마음을 열려면 그 중 나은 방법이 얼른 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혼자만 취해 망가져선 곤란하다. 다같이 왕창 한꺼번에 엎어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래서 고안된 방법이 폭탄주라고 한다면, 폭탄주 애호가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술자리에서도 쉽게 서로를 내보이기 힘든 인간관계가 더 많다는 것이 폭탄주를 있게 하는 진짜 원인은 아닐는지. www.mind-open.co.kr

양창순 신경정신과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