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경부가 제시한 경기부양책에 기업연금이 포함된다고 알려지면서 이를 보는 시선들이 곱지 않다. 심지어 기업연금 문제가 경기부양에만 관련된 것으로 보는 경향마저 있다. 그렇지만 기업연금 제도가 근로자의 노후보장에 적합하고 사용자가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인지, 전체 노후보장 체계와는 잘 맞는지 따져봐야 한다.
정부안을 살펴보면 몇 가지 문제점이 지적될 수 있다. 우선 기업연금과 기존 퇴직금 중 기업 노사가 자율적으로 선택케 한다는 대목이다. 기업연금이 현행 퇴직금제도의 개선책이라면 정부는 그 선택권을 기업에 줄 것이 아니라 좀 더 적극적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를 기업이 선택하도록 한 것은 정부가 정책의 정당성을 스스로 포기한 것으로 지적될 수 있다.
재정부담 방식도 문제다. 현재 정부는 사용자는 기존 퇴직금 수준으로 전액 부담하고, 근로자는 임의로 추가 부담토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기업연금은 기업 입장에서는 우수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하게 해주는 제도이다. 그런데 기업부담 수준이 모두 같다면 기업이 근로자를 끌어들일 메리트가 없게 된다. 반면 근로자 입장에서는 어느 기업에 가든 똑같은 연금을 받게 되니 공적 연금과 별반 차이가 없게 된다. 이는 국가가 주도하는 공적 연금과 기업연금의 근본적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데서 나온 발상이라 할 수 있다.
적립기금의 사용 방법은 어떤가. 정부는 기업연금 적립액을 어디에 투자할 것인지 노사의 결정에 따를 전망인데, 그 결과는 거론할 필요도 없다. 미국 등에서 근로자들이 어설픈 주식 투자로 자신의 연금 가치를 잃고 있는 현실을 보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조치는 기업연금을 적용하는 모든 근로자와 사용자를 ‘개미군단’화하겠다는 것이다.
관리운영 주체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관건은 가입자에 대해 철저한 신뢰와 최적의 효율성 확보에 있지만, 투신사 등 금융전문회사는 신뢰도가 각양각색이다. 보험료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모집비용도 문제다. 관리운영비가 훨씬 낮은 연금공단과 경쟁체제로 운영하도록 하는 것이 필수다.
정부는 장기 실직자나 주택구입자의 경우 연금의 중간 인출을 허용하고 일시금을 지급할 방침이라고 한다. 일견 그럴듯해 보이지만 이 제도가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제대로 고려했는지 의문이다. 1985년 스위스에서 기업연금을 강제화한 이후 주택구입을 조건으로 일시금을 지급하자 부동산 가격이 두 배로 폭등해 오히려 주택구입은 요원해지고 노후보장에도 치명적인 한계를 드러냈던 경험이 있다.
이렇듯 정부가 추진하는 기업연금은 제시된 내용만으로도 점검해야 할 문제가 산적해 있다. 그렇지만 좀 더 근본적인 문제는 다른 데 있다. 현행 국민연금의 재정불안정에 더해 기업연금까지 도입되면 그 보험료 부담이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 노후보장을 오히려 위협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과제는 근본적인 차원에서 노후보장체계를 제대로 구축하는 일이다.
김진수 강남대 교수·사회복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