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잔치는 끝났다. 월드컵이 가져다 준 한국 특수도, 매일같이 한국 소개를 해대던 일본 TV의 프로그램도 요즘은 눈에 띄게 줄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인들의 한국어 학습 열기는 여전히 뜨겁다.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은 동대문시장을 얘기하는가 하면 한국 연예인에 대해 재일 한국인들보다 더 열성을 보이기도 한다. 한국어 교육에 종사하는 사람으로서 흐뭇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한국어가 2002년부터 대학입시의 정식과목으로 채택되면서 NHK가 발행하는 한국어방송 학습교재의 출판 부수가 월간 16만부(라디오와 TV 합산)에 이르는 등 일본 내 한국어 학습자는 약 10만명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열정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일본인 학습자들은 실전에 임하는 마음으로 한국으로 여행을 떠나곤 한다. 올 하반기 두 차례에 걸쳐 필자의 학교 학생들도 부산의 자매학교인 동서대학교로 단기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그런데 출발에 앞선 설명회에서 한 일본인 수강생에게서 웃어 넘길 수 없는 질문을 받았다.
“선생님, 진짜와 가짜는 한국어로 뭐지요?”(先生,本物と僞物は韓國語で何ですか.) 한국 여행을 몇 번 경험한 또 다른 수강생은 ‘짜가’라는 말은 뭐냐고 물어본다. 암담하다.
일본에서 출발하는 대부분의 한국 단체여행에는 면세점은 물론 카피상품 가게를 들르는 일정이 포함돼 있다고 한다. 현지 가이드의 안내로 훤한 진열대를 지나 안쪽의 어두컴컴한 창고 같은 방으로 들어간 뒤에서야 비로소 본격적인 ‘한국 명품’ 쇼핑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 때 써먹을 수 있는 필수적인 표현이란 것이 “깎아주세요”보다는 “이거 진짜 아니지요?”라는 것임을 한국을 다녀온 적이 있는 일본인들은 다 잘 알고 있다.
이러다가는 한국 관광이 이미 일본인들에게 인기가 없어진 홍콩의 전철을 밟지는 않을까 염려된다. 과거 한국말을 모르는 일본인들이 한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빨리빨리’였다. 그러나 이제는 ‘진짜 가짜’라는 단어로 바뀌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교육현장에서 이를 바라보는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또 이런 경우도 있다. 일본인 한국어 학습자들은 모처럼 찾아간 한국의 백화점이나 재래시장에서 자신의 한국어 실력을 확인하고 싶어 서툴게 점원에게 말을 건네곤 한다. 그러나 돌아오는 대답은 유창한 일본어다. 어렵사리 한국어를 꺼낸 일본인에게는 김빠지는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상점으로서는 외국인 손님이 언어의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지속적으로 아끼고 사랑할 수 있도록 “한국어 배우세요? 잘 하시네요”라는 식의 격려 한 마디 덧붙이면 어떨까.
언어는 시대를 반영한다. 주옥같이 아름다운 우리말을 가르치지 못할망정 부정적인 단어와 표현을 먼저 가르치고 싶지는 않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모처럼 찾아온 일본 내의 한국·한국어 붐을 그냥 이대로 거품처럼 사라지게 할 수는 없다. 이 시간에도 한국말은 사람보다 더 빨리, 더 많이 현해탄을 건너다니고 있다.
조완제 일본 KELI한국어교육연수센터교장·다쿠쇼쿠 대학 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