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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전진우/여론조사의 ´함정´

입력 | 2002-11-11 18:09:00


우리네 격언에 ‘백성의 입 막기는 냇물 막기보다 힘들다’고 했다. 영국에서는 아예 ‘모든 사람이 하는 말은 진리’라고 했다. 여론의 힘이 그만큼 크다는 소리다. 하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것도 여론이다. 그래서 18세기 프랑스의 계몽주의 사상가 볼테르 같은 이는 “민중이 논의를 하기 시작하면 모든 것을 잃는다”고 했는가 보다. 여론의 양면성이다. 그야 어쨌든 대중(大衆)을 우중(愚衆)으로 부를 수 없는 민주주의 시대에 여론의 힘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실제 볼 수 없고 만져지지도 않으나 모두가 두려워하는 ‘어떤 존재’라고까지 할 만하다.

▷그 존재의 힘을 얻기 위함이었을까.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후보에게 국민경선 대신 여론조사로 후보단일화를 해도 좋다고 했다. 사실 노 후보로서는 승부를 건 도박이나 마찬가지다. 요즘 여러 여론조사에서 노 후보는 근소한 차이라고는 해도 줄곧 정 후보에게 밀리고 있으니까. 하기야 노 후보로서는 TV토론을 하고 난 뒤 여론조사를 하면 역전이 가능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거꾸로 정 후보는 그 점이 찜찜할 게다. 그래서인지 정 후보쪽에서 다른 말이 나오는 모양이다. 이래저래 여론조사를 통한 단일화가 성사될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여론의 힘이 막강하다고 해서 여론조사 결과까지 절대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 여론조사란 애초부터 일정한 오차를 상정하고 하는 작업이다. 예컨대 전국적 규모의 여론조사에서 오차한계 ±3%에 95%의 신뢰도라면 전국의 모든 성인을 대상으로 같은 시기에 같은 방법으로 같은 질문을 하더라도 그 여론조사 결과가 표본조사 값의 ±3% 내에 속할 가능성이 95%라는 것이다. 따라서 엄밀하게 말하면 오차범위 내의 순위란 의미가 없다. 오차한계를 어느 쪽에 유리하게 적용하느냐에 따라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의 ‘함정’이다.

▷같은 날 같은 사안을 묻더라도 질문의 방법이나 순서 등에 따라 전혀 결과가 달라질 수도 있다. 실례로 최근 두 신문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후보단일화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느냐’는 설문에 한 쪽은 그렇다는 응답이 압도적으로 우세한 반면 다른 쪽은 그 반대다. 이럴 경우 ‘예’가 여론인가, ‘아니오’가 여론인가. 아무튼 게임의 룰을 정한다면 여론조사가 갖는 오차의 한계도 접고 들어가야겠지만 한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인물들이 여론조사로 우열을 가리겠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그 뒷맛이 씁쓸하지 않은가.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