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11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3남 홍걸(弘傑)씨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10일 전 형 홍업(弘業)씨가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것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설령 죄가 있더라도 형제를 한꺼번에 구속하지는 않는 관례를 참작해 재판부가 상대적으로 죄질이 낮은 홍걸씨에게 관대한 판결을 내렸다는 것이 법원측의 설명이다.
담당 재판부의 김용헌(金庸憲) 부장판사는 “가족 중 한 명이 이미 실형을 선고받았다면 이는 중요한 양형 참작 사유”라며 “80년대 서슬 퍼렇던 시절에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부자가 함께 기소된 경우 아들을 용서해 준 사례가 있다”고 덧붙였다. 당초 형보다 먼저 선고가 예정됐던 홍걸씨측이 선고 기일을 뒤로 늦춘 전략이 확실히 성공한 셈이다.
담당 재판부는 이날 선고에 앞서 A4용지 11쪽에 이르는 장문의 글을 통해 “△청탁 내용이 ‘심사가 공정하게 이뤄지도록 해달라’는 정도인 점 △청탁이 실제로 이뤄지지 않은 점 △범행의 전 과정이 최규선에 의해 주도되고 소극적 수동적으로 이뤄진 점 △이미 반 년 가까이 수감생활을 한 점 등을 고려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며 정상 참작의 이유를 상세히 밝혔다.
홍걸씨 변호인측이 선고 공판에 앞서 참회하는 내용의 최후 변론서와 홍걸씨 부인의 탄원서 등을 재판부에 제출한 것도 집행유예를 이끌어내는 데 기여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재야 법조계와 시민단체에서는 대통령의 아들이라는 특수 지위를 이용해 36억9000여만원이라는 거액을 받은 홍걸씨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너무 관대한 판결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법원이 성전건설로부터 받은 7500만원 부분만 무죄를 선고하고 나머지 부분에 대해 모두 검찰의 공소사실을 인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집유를 선고한 것은 예상 밖이라는 반응이다.
박찬운(朴燦運) 변호사는 “형(홍업씨)이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았다고 하더라도 홍걸씨는 금품수수 액수나 죄질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벼운 형량을 받은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참여연대 투명사회국 이재명(李在明) 간사도 “우리 사회에서 권력형 비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점에서 대통령 등 고위 공직자 주변 인물들에 대해서는 더욱 엄정한 사법적 판단이 필요하다”며 “비록 재판부가 여러 가지 사유를 양형에 참작했다고 하지만 국민은 이를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편 기업체 등으로부터 32억원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김영삼(金泳三) 대통령의 차남 현철(賢哲)씨는 1심에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재판 도중 보석금 1억원을 내고 석방된 적이 있다.
길진균기자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