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12일 본회의를 소집해 의결정족수(재적의원 272명의 과반수인 137명)를 채우지 못한 상태에서 7,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40여건의 법안을 재의결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나흘간의 무효법안 논란은 일단 마무리될 전망이다.
박 의장은 11일 오전 국회 간부회의를 주재한 데 이어 김태식(金台植) 조부영(趙富英) 국회부의장을 불러 재의결 방침을 설득하고, 이어 한나라당과 민주당 지도부에 연락해 동의를 받아냈다. 당초 재의결에 대해 소극적이었던 국회 사무처도 이날 오전부터 재의결 입장을 강력히 개진했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박 의장이 이 같은 결심을 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가장 강하게 거부한 곳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도부였다.
제1당인 한나라당의 이규택(李揆澤) 원내총무는 시종 “당시 본회의장 바깥 복도와 화장실, 휴게실 등에 있었던 의원들까지 포함하면 의결정족수가 된다. 아무 문제될 것이 없다”며 ‘버티기’로 일관했다. 이 총무의 주장은 ‘표결을 할 때는 회의장에 있지 아니한 의원은 표결에 참여할 수 없다’는 국회법 111조를 무시한 발언이었다. 당직자들은 “본회의장 근처에 있는 의원들을 출석한 것으로 간주하는 관행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당시 본회의장 근처에는 의원들이 거의 없었다”는 지적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나라당은 언론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9일부터 11일까지 아침마다 고위당직자들이 모여 선거전략회의를 열었지만, 경쟁 후보를 비난하는 정쟁 발언만 쏟아냈을 뿐 이 문제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도 9, 10일 잇따라 선대위회의를 열었으나 이 문제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다만 조순형(趙舜衡) 선대위 정치개혁추진위원장과 함승희(咸承熙) 의원은 “절차상 당연히 무효이므로 재의결할 것을 촉구한다”는 의견을 줄기차게 밝혔다. 노무현(盧武鉉) 후보는 11일 뒤늦게 “재의결하는 게 옳다”는 입장을 보였다.
본보를 비롯한 언론이 연일 이를 크게 보도한 데 이어 11일 오전 학계 및 법조계, 시민단체가 공개적인 비판 대열에 합류하면서 재의결 여론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이날 대한변협은 상임이사회를 열어 “국회가 제정한 법을 국회 스스로 위반해선 안 된다. 의결정족수 미달 상태에서 통과된 법안은 효력이 없으므로 재의결해야 한다”고 결정했다. 참여연대도 전날 “국회가 헌법을 어긴 것은 국민에 대한 배임행위다”며 비난 논평을 냈다. 법학 및 정치학 교수들도 비판적인 의견을 제시했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한나라당과 민주당에서는 “무작정 버티기는 힘든 것 같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가”라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박 의장이 국회 안팎의 의견을 듣고 재의결키로 결심한 뒤 각 당 지도부를 설득해 동의를 받아냄으로써 ‘나흘간의 버티기’는 막을 내렸다.
한 국회 관계자는 “국회가 헌정사상 처음으로 재의결을 하는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난 뒤 전자투표로 같은 안건을 다시 의결하는 12일에도 결석하는 의원이 있을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