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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크기-품질 맞추니농산물도 돈되네

입력 | 2002-11-12 18:31:00



경기 구리시 구리복합영농조합 소속 농민 25명은 요즘 ‘농산물 규격화’의 단맛을 보고 있다.

밭 2만6000여평에서 거둬들인 파의 대부분(80%)이 고품질이었기 때문.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처럼 ‘잘 나온 파’는 열 포기 중 서넛에 불과했고 일일이 고르느라 손도 많이 갔다.

이 조합 박장헌(朴長憲) 조합장은 “들쭉날쭉 심다가 올해 일정한 간격으로 파종했더니 제일 좋은 크기의 상품이 무더기로 나왔다”면서 “지난해 시세를 기준으로 할 때 40% 정도 이익이 늘 것 같다”고 말했다.

농산물을 일정한 크기와 품질로 생산해 등급별로 분류한 뒤 규정 포장용기에 담아 출하하는 ‘규격화’가 확산되고 있다. 특히 소비자가 좋아하는 크기로 생산하고 원하는 용량으로 정직하게 포장해 소득을 높이는 농가가 크게 늘었다.

국립 농산물품질관리원 품질관리과 황진렬(黃軫烈) 사무관은 “규격화는 농산물 유통에 신뢰와 효율성을 높인다”면서 “규격을 맞추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은 일이지만 이를 지키면 기대 이상의 소득을 올릴 수 있다”고 말했다.

▽‘과유불급(過猶不及)’, 로열 크기로 생산하라〓농작물은 농업인의 뜻대로 자라지 않는다. 하지만 파종 때부터 신경을 쓰면 상품성을 좋게 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았다.

20여년 동안 무를 전문적으로 심어온 경기 화성시의 농기계 임대업자 정대신(鄭大新)씨는 “무는 가로세로 25㎝로 간격으로 심을 때 가장 좋은 상품이 나온다”면서 “제대로만 심어도 10% 이상 수익을 더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간격을 넓게 심으면 무가 지나치게 커지고 토지 이용률이 떨어지며, 좁게 심으면 무의 몸통이 홀쭉해져 상품성이 나쁘다는 얘기다.

전남 해남군의 참다래 유통사업단 정운천(鄭雲天) 회장도 ‘규격화’로 한때 시장에서 외면 받던 고구마를 알짜 상품으로 만들었다. 정 회장은 “심는 간격과 재배기간을 줄여 고구마가 지나치게 커지는 것을 막았고 파종하기 전 땅을 다져 상품성이 나쁜 길쭉한 모양이 나오지 않도록 했다”고 말했다. 이로써 절반 수준이던 상품(上品)의 수확 비율이 75%까지 높아졌고 소득은 30% 이상 증가했다.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 관계자들은 “생산 단계에서부터 규격화를 시도할 경우 아주 작은 차이지만 실제 소득에서는 차이가 커질 수 있다”면서 “농민 가운데 이를 잘 모르는 사람도 있어 안타깝다”고 말했다.

▽정직하고 적절한 포장은 기본〓농산물 유통에서 큰 골칫거리인 ‘속박이’는 사라지고 있다. 속박이는 박스의 상단에는 좋은 상품을 놓고 눈에 띄지 않는 아래쪽에는 질 나뿐 상품을 채워 품질을 속이는 것.

농산물품질관리원에 따르면 전국 30개 공영 도매시장에 출하되는 농산물 가운데 품질을 속이거나 중량을 속이다 적발된 사례는 99년 4517건에서 지난해 3203건으로 줄었다. 올해 역시 9월말 현재 1668건으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반면 농림부가 정한 표준 규격에 따라 출하하는 비율은 급증하는 추세. 농림부는 농산물 127종, 화훼류 15종에 대해 ‘표준규격’을 정해놨다.

농협중앙회 가락공판장 김청용(金淸龍) 부장은 “정직하게 포장을 할수록 상대적으로 값을 높게 받는다”면서 “농민들이 이 사실을 정확히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앞서나가는 일부 농민은 소비 흐름의 변화를 반영해 포장 용량에 변화를 주고 있다. 농협유통 물류판촉부 이은상(李殷相) 과장은 “대부분 품목에서 예전에는 15㎏ 포장이 주종을 이뤘지만 2, 3년 전부터 대부분 10㎏ 포장을 사용하고 있다”면서 “최근에는 5㎏ 포장을 한 상품이 가장 잘 팔린다”고 말했다. 그는 또 “조만간 농협에서 판매하는 모든 과일 포장이 5㎏이하로 바뀔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세계 이마트 야채담당 금석헌(琴錫憲) 바이어는 “농산물의 포장 단위가 해당 지역 농업 수준을 나타내는 지표로 인식될 정도”라면서 “소비 흐름에 맞는 포장 단위 변경은 상품성을 높이는 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 많다. 농촌진흥청 농업경영정보관실 이병서(李秉瑞) 박사는 “현재 농산물 규격화는 크기나 포장, 중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궁극적 목적은 당도와 맛 등 품질의 규격화”라면서 “일본 등 선진국처럼 브랜드와 등급만으로 해당 상품의 모든 것을 소비자가 알 수 있으면 농산물 유통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고 강조했다.이헌진기자 mungchii@donga.com

박형준기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