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은행산업 대형화의 물꼬를 튼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합병을 통해 수익성이 높아졌다고 보기는 아직 어렵다”(금융연구원 이동걸 박사)
11월1일 합병 1주년이 된 국민은행. 소매금융시장의 확고한 1인자이며 총자산은 다른 시중은행의 배가 넘는 200조원을 달성해 세계 60위권 은행에 진입했다.
합병 과정에서 노조 파업 등 난관을 거쳤지만 빠른 시간 안에 전산, 인사시스템, 기업이미지(CI)를 통합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인수합병(M&A)의 지상목표인 수익성 증가는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물론 세계적인 M&A 경험으로 볼 때 1년 이내에 시너지효과를 내는 것이 어렵기는 하다. 문제는 내년부터 본격적인 합병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을지 여부이다.
▽외형확장에는 일단 성공〓소매금융에 치중하는 은행으로선 총자산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대마진율(대출금리-예금금리)이 일정하다고 가정할 때 대출규모를 키워야만 이익이 늘고 고객 1인당 전산처리 비용이 낮아지기 때문이다.
또 광범위한 고객기반과 전국적인 점포망을 바탕으로 다양한 금융상품을 팔 수 있어 시장지배력이 높아진다.
이런 점에서 국민은행은 총자산 200조원과 점포수 1200개를 확보해 추가수익을 낼 수 있는 기반을 확보했다. 특히 합병 과정에서 고객이 10% 정도 떨어져 나가는 게 보통인데 국민은행은 오히려 약 120만명이 늘어났다.
이는 김정태 행장이 합병목표를 비용절감이 아니라 수익증가에 초점을 맞추는 확장전략을 썼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판매관리비는 작년 1∼9월 1조6212억원에서 올해 같은 기간 1조7736억원으로, 인건비는 7895억원에서 8847억원으로 늘어났다.
국민은행이 합병을 통해 규모의 경제를 이루자 신한 하나 등 다른 은행들이 합병을 서두르는 부대효과도 나타났다. 이는 대형 선도은행 3, 4개로 금융권을 재편하려는 정부의 의도와 일치한다.
미래에셋증권 한정태 연구원은 “국민은행 합병은 일단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지금은 국내 은행의 상품과 서비스가 모두 똑같지만 앞으로 얼마나 서비스를 차별화하는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수익성 증가는 미검증〓합병 이후 이익 부문에서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다. 당기순이익은 1100억원이 줄었고 자본이익률(ROE)도 4%포인트나 떨어졌다. 반면 시가총액은 작년 9월 말 8조2469억원에서 올 9월 말 14조2161억원으로 72.4% 증가했다. 이 기간 종합주가지수는 34.7% 올랐다.
최근 미국 웰스파고은행의 손성원 수석부행장은 “은행 합병의 목표는 오로지 이익을 늘리는 것”이라며 “국민은행은 아직 증권 투신 보험상품 판매를 통한 수수료 수익 증가가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의 대형은행들은 예대마진 수익과 수수료 수익의 비중이 50 대 50 수준이다. 그러나 국민은행을 비롯한 국내은행은 예대마진 수익이 80∼90%를 차지한다. 경기침체로 가계의 소득수준이 낮아지면 이익규모가 급감하는 불안정한 구조다.
현대증권 조병문 연구원은 “합병 이후 금융시장에서 시장지배력은 커졌지만 자산운용의 효율성은 높아지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이런 지적에 대해 김 행장은 “합병 후 1년 내에 전산시스템을 통합한 것은 세계적으로도 아주 빠른 것”이라며 “내년부터는 보험과 수익증권을 많이 팔아 수수료 수익을 높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감독당국의 평가〓금융감독원과 한국은행은 7일부터 국민은행에 대한 공동검사를 실시하고 있다.
감독당국은 국민은행이 합병 이후 시장에서 가계대출 및 신용카드 경쟁을 촉발한 것으로 보고 경영전략을 꼼꼼히 점검, 이를 억제할 방안을 찾고 있다.
앞으로 은행권이 3, 4개 대형은행 위주로 재편되면 은행간 합리적 경쟁과 금융시스템 안정이 더욱 중요해진다. 이에 따라 감독당국의 감독 능력이 정교해져야 하는데 일단 국민은행에서 그 해답을 찾고 있다는 것.
금융연구원 이동걸 박사는 “선도은행은 다른 은행의 고객을 빼앗기보다는 새로운 수익기반을 발굴해 다른 은행이 따라오도록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용기기자 ykim@donga.com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