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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8월의 저편 173…1929년 11월 24일 (24)

입력 | 2002-11-14 17:50:00


휭-휭, 볼이 따끔따끔하고 눈물이 말라 있다. 아마도 잠시 잠이 든 모양이다. 산신상의 촛불은 다 탔는데 방 전체가 어스름 밝다. 달빛만으로 이렇게 밝을 수 있을까? 여자는 동창의 달 그림자에 이끌리듯 일어났다가 통증에 얼굴을 찡그리며 벽에 기댔다. 허리, 다리, 목, 어깨, 팔, 통증이 없는 곳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여자는 오른손을 벽에 대고 앞으로 나아갔다. 한 발 아야! 한 발 아야! 한 발 아야!

발소리를 듣고 여자의 숙모가 안방 문을 열었다.

방금 전에 우철 씨가 다녀갔다.

우철? 그 사람하고 같이?

아니, 혼자였다. 너 형님이 선물을 전해 달라고 부탁한 모양이더라.

뭐라?

봐라, 저기 있는 짚 꾸러미.

여자는 어깨를 벽에 대고 천천히 몸을 낮추면서 조심조심 방바닥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짚 꾸러미를 풀었다. 털을 뜯어내고 배를 가른 암탉이 모습을 드러냈다.

뭐고, 이게?

…암탉이네.

이 무슨 장난질이고.

장난질은, 너 젖 잘 나오라고 귀한 암탉을 장만해 준 거다.

닭을 먹으면 알라 피부가 닭살처럼 된다는 말도 모르나?

아이고, 너는 어째 매사를 그래 나쁜 쪽으로만 생각하노….

이런 몹쓸 짓을!

아이구 마, 마음 좀 가라앉히고, 알라 얼굴이라도 좀 봐라. 젖도 물리고. 알라 좀 안아 줘라. 너무하다 아이가, 태어난 알라를 한 번 안아 주지도 않고.

난 안 안는다. 그 사람이 안아주기 전에는 안 안는다!

아이고, 그래 유난 떨거 뭐 있노.

여자는 암탉의 목을 잡고 비틀비틀 툇마루로 나가더니 팔을 휘휘 돌려 삼나무 가지에 내던졌다. 철퍽! 암탉은 땅에 떨어져 알과 심장과 간과 모래주머니가 마른 잎 위로 쏟아져나왔다. 쏴아 쏴아 쏴아, 삼나무 가지가 여자의 머리 위에서 미친 듯 춤추기 시작하고, 그 그림자가 기어가듯 마당 밖으로 뻗어나갔다. 쏴아 쏴아 쏴아 쏴아 쏴아 쏴아.

글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