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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이름짓기 '족보'는 따졌나요

입력 | 2002-11-14 18:07:00

한 영어 학원 새벽반에서 직장인들이 회화수업을 하는 모습./동아일보 자료사진


김포에 사는 주부 이지현씨(31)는 올 초 딸을 영어 유치원에 입학시키면서 숙제를 하나 받았다.

유치원에서 부를 딸의 영어 이름을 짓는 것이었다. 이씨에겐 매우 간단한 숙제였다. 애초에 딸의 이름을 지을 때 ‘글로벌한 이름’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알파벳으로 표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딸의 이름은 신유리(6). 외국인이 발음하기 쉽도록 받침을 넣지 않았다. 영어로는 ‘Yuri’로 표기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Yuri’가 서양에서는 남자 이름으로 쓰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박모씨(30·여). 외국인을 상대할 일이 많아 대학 시절 영어 학원에서 썼던 진(Jean)이란 이름을 명함에 새겨 넣었다.

박씨는 “별 생각 없이 붙인 이름인데 영국인 임원이 ‘진’이라고 부를 때마다 야릇한 미소를 지어서 이상하게 느꼈다”고 말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임원의 할머니 이름이 ‘진’이었다. 그 임원은 “할머니 시대에 붙이던 이름을 젊은 여자가 쓰고 있어서 웃음이 났던 것”이라고 이유를 밝혔다.

영어 이름을 지어 쓰는 사람이 늘고 있다. 해외 영업 임직원 200여명이 모두 영어 이름을 지어 활용하고 있는 LG화학의 경우처럼 몇 년 전만 해도 해외 영업을 하는 비즈니스맨들이 주로 영어 이름을 만들었지만 최근에는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는 추세.

특히 30대 전후의 ‘어학 연수 세대’는 대부분 영어 이름을 갖고 있으며 별명이나 e메일 아이디 등으로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영어 유치원의 확산도 영어 이름짓기 유행을 부채질하고 있다.

또 한글 이름에 ‘석’ ‘범’ ‘수’ 같은 글자가 들어 있어 영어로 그대로 옮기면 나쁜 의미가 되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영어 이름을 짓는 경우도 많다. ‘석’은 ‘핥다(Suck)’, ‘범’은 ‘건달(Bum)’, ‘수’는 ‘소송하다(Sue)’의 뜻을 지닌 낱말로 발음된다.

문제는 필요해서 영어 이름을 짓기는 하지만 이름의 의미와 유래 등을 따져 제대로 짓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점. 미국 뉴욕에서 사업을 하는 정성원씨(34)는 “한국에서 온 사람들을 보면 남자 이름인지 여자 이름인지, 구식 이름인지, 어느 인종이나 민족의 사람들이 주로 쓰는 이름인지 등을 고려하지 않고 이름을 짓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크리스(Chris)라는 이름을 쓰던 한 외국계 기업 여직원의 사례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냥 예뻐 보여서 크리스(Chris)라는 이름을 붙였는데 한참 지나서야 크리스가 남자 이름으로 많이 쓰이는 크리스토퍼(Christopher)의 애칭이라는 사실을 안 것.

자신에게 배달되는 해외우편물 수신인란에 으레 ‘미스터 (Mr)’라는 존칭이 붙었던 이유도 그제서야 알았다.

인터넷에서 영어 이름짓기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이름세상(babyname.co.kr)의 이은규 실장은 영어 이름을 지을 때 주의해야 할 점 몇가지를 꼽았다.

첫째, 성별을 고려할 것. 조슈아(Joshua)는 한글 어감으로는 여자 이름에 가깝다. 하지만 실제로는 영어권 사회에서 남자 이름으로 매우 인기 있다. 성별을 확인하려면 베이비네임즈닷컴(babynames.com)처럼 쓰이는 이름을 성별로 구분하고 각 이름의 의미와 유래 등을 소개하는 사이트를 참고하는 게 좋다. 서양 이름에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에서 유래된 것이 많기 때문에 근원을 확인하는 것도 필요하다.

다음으로는 인종을 염두에 둘 것. 예를 들어 흑인들이 유독 즐겨 쓰는 이름을 동양인이 쓰게 되면 어색하다는 지적이다. 이 실장은 에리카(Erica), 에보니(Ebony), 레이븐(Raven), 욜란다(Yolanda) 등을 대표적인 흑인 이름으로 꼽았다.

구식 이름인지, 최근 유행하는 이름인지 확인하는 것도 중요하다. 미국 사회보장국이 신생아 등록 자료를 토대로 매년 인기 이름 순위를 공개하는 인터넷 사이트(www.ssa.gov/OACT/babynames/)를 참고하면 특정 시기에 유행하는 이름을 확인할 수 있다.▶표 참조

특징은 남자 이름은 크게 유행을 타지 않는 반면 여자 이름은 상위권에 올라 있는 이름이 연도별로 적잖이 다르다는 점. 1900∼1909년 인기 여아 이름 10걸인 메리(Mary), 헬렌(Helen), 마거릿(Margaret), 안나(Anna), 루스(Ruth), 엘리자베스(Elizabeth), 도로시(Dorothy), 머리(Marie), 밀드레드(Mildred), 앨리스(Alice) 가운데 지난해 인기 여아 이름 ‘톱 10’에 든 이름은 ‘엘리자베스’밖에 없다.

이 실장은 “자신이 태어난 연도를 검색해서 상위에 올라 있는 이름 가운데 하나를 택하면 적어도 ‘구식 이름’이라는 얘기는 듣지 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또 “주변에 친한 외국인이 있으면 이름을 확정하기 전에 의견을 물어보는 게 좋다”고 이 실장은 덧붙였다. 그 사회에서 특정 이름이 어떤 이미지를 갖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는 것.

이 실장은 “대다수 미국인이 ‘코트니(Courtney)’라는 이름의 여성은 매력적, 지성적일 것이라고 기대하는 반면 버사(Bertha)라는 이름의 여성은 뚱뚱하고 시끄러운 사람일 것으로 생각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었다”고 소개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출생연대별 미국 남녀 인기 이름

2001년생

순위

1

Jacob

Emily

2

Michael

Madison

3

Matthew

Hannah

4

Joshua

Ashley

5

Christopher

Alexis

6

Nicholas

Samantha

7

Andrew

Sarah

8

Joseph

Abigail

9

Daniel

Elizabeth

10

William

Jessica



1980년대생

순위

1

Michael

Jessica

2

Christopher

Jennifer

3

Matthew

Amanda

4

Joshua

Ashley

5

David

Sarah

6

Daniel

Stephanie

7

James

Melissa

8

Robert

Nicole

9

John

Elizabeth

10

Joseph

Heather



1960년대생

순위

1

Michael

Lisa

2

David

Mary

3

John

Karen

4

James

Susan

5

Robert

Kimberly

6

Mark

Patricia

7

William

Linda

8

Richard

Donna

9

Thomas

Michelle

10

Jeffrey

Cynthia



1930년대생

순위

1

Robert

Mary

2

James

Betty

3

John

Barbara

4

William

Shirley

5

Richard

Patricia

6

Charles

Dorothy

7

Donald

Joan

8

George

Margaret

9

Thomas

Nancy

10

Joseph

Hel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