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가박스의 유럽영화제에서 상영될 ‘비엘 파시에르트-쾰른에의 송가’. 사진제공 서울유럽영화제-메가필름페스티벌 조직위
국내에서 예술영화가 가장 잘되는 곳은?
몇 안되는 예술영화 전용관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 소비 중심지의 하나인 서울 강남의 복합상영관 메가박스다. 한국 코미디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극장가를 지배하다시피 한 현실에서, 서울 강남 한복판의 최첨단 극장이 예술영화의 숨통을 틔워주고 있다는 사실은 의외다.
올해 6월 개봉된 테리 즈와이고프 감독의 ‘판타스틱 소녀백서’는 흥행에 참패했으나 전체 서울관객(4720명)의 47%(2052명)를 메가박스에서 얻었다. 4월 개봉된 로버트 알트만 감독의 ‘고스포드 파크’는 전체 서울관객 (3만6284명)의 37.6%(1만3310명)가 메가박스의 관객들이다. ‘귀족영화’로 마케팅이 됐던 이 영화는 상영기간이 점점 짧아지는 추세에도 불구하고 메가박스에서 3주간 상영되는 ‘진기록’을 세웠다.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멀홀랜드 드라이브’, 웨스 앤더슨 감독의 ‘로얄 테넌바움’도 메가박스에서만 ‘성공’한 예술영화들.
예술영화가 메가박스에서 다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 프루트 첸 감독의 ‘리틀 청’은 메가박스에서도 3일만에 종영했다. 거친 톤의 영화였기 때문이라는 게 관계자들의 진단이다.
영화 수입사 디지털 네가의 조성규 사장은 “메가박스를 찾는 관객중에는 외국인이나 상영작의 언어를 이해할 수 있는 관객이 다른 극장에 비해 많고, 고급스러운 예술영화를 선호하는 관객층이 어느 정도 이곳으로 몰리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메가박스가 올해 3회째 여는 ‘서울유럽영화 메가필름페스티벌’(29일∼12월 2일·www.meff.co.kr.)도 그런 ‘틈새’를 겨냥한 행사. 다른 극장에서 ‘찬밥신세’인 유럽 영화들만 상영하는 이 페스티벌의 좌석 점유율은 1회때 82%, 2회때 94%였다. 11월 극장가의 평균 좌석 점유율(58%)에 비하면 크게 높은 수준이다.
올해 상영되는 유럽 14개국의 영화 28편 중에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등 세계 15명의 거장이 참여한 옴니버스 영화 ‘텐 미니츠-첼로’, 빔 벤더스 감독의 신작 ‘비엘 파시에르트-쾰른에의 송가’ 등 메가박스 개봉을 목표로 삼아 아시아 최초로 상영되는 영화들도 포함됐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