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바람이 우리를…´ 장면중/사진제공 백두대간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 향기’ 등을 통해 세계적 거장으로 성장한 이란 영화감독 압바스 키아로스타미가 만든 영화에는 공통된 특징이 있다. 인위적 연출을 배제하고 얻어내는 담백한 진실의 힘에도 불구하고 관객의 참을성 있는 관찰을 요구하는 것.
그러나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는 그의 작품들 가운데 비교적 코믹하고 드라마틱한 편에 속한다. 화면의 색감은 가장 아름답다고 해도 무리가 아닐 듯 싶다.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450마일 떨어진 외딴 마을 시어 다레에 수상쩍은 사람들이 지프를 타고 들어온다. 전화기술자라는데 별 하는 일이 없이 빈둥대는 이들은 사실 마을 최고령 할머니의 장례식을 촬영하러 온 취재팀.
그러나 이들이 너무 일찍 온 게 문제였다. 팀의 리더인 베흐저드는 마을을 안내해주던 소년 파흐저드를 통해 날마다 할머니의 상태를 체크하는데 할머니는 돌아가시기는커녕 회복의 기미까지 보이기 시작한다.
베흐저드는 성마르고 이유 없이 바쁜 현대 도시인의 전형. 휴대전화 통화조차 잘 연결되지 않는 산골 마을에서 그는 아침에 일어나 동네사람들과 잡담을 나누다 휴대전화가 울리면 전화가 잘 터지는 언덕 위로 차를 몰고 올라가고 저녁이 되면 꼬마에게 할머니의 병세를 묻는 일과를 매일 반복해야 하는 처지다. 짜증스럽게 이 지루한 일과를 반복하던 베흐저드는 언덕에서 구덩이를 파다 흙더미에 갇혀버린 청년을 구해준 뒤 변해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마을의 의사가 “주변의 소소한 행복에 기뻐할 줄 알고 지금의 삶을 즐겨라”면서 베흐저드에게 들려주는 충고는 키아로스타미 감독이 관객에게 건네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자칫 태평스러운 충고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베흐저드가 발로 걷어차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스스로 몸을 뒤집는 거북, 어두운 지하에 등불을 켜놓고 소젖을 짜면서도 풋풋한 사랑에 빠진 16세 소녀를 보다보면 나중에는 의사의 흥얼거림조차 현자의 잠언처럼 들린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다른 영화들처럼 출연진은 모두 비전문 배우와 실제 마을의 주민들이다. 1999년 베니스 국제영화제 심사위원대상 수상작. 영어제목은 ‘The Wind Will Carry Us’. 전체 관람가. 22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