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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미선기자의여행스케치]초경량비행기 체험

입력 | 2002-11-15 11:47:00


하늘 높이 날아라~ 꿈을 싣고 훨훨 날아라~

하늘을 훨훨 날며 자유를 만끽하고 싶은 마음…. 누구나 한번쯤 날고 싶었던 기억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움직이는 건지 아닌지 도무지 느껴지지 않는 대형 비행기는 사실 하늘을 난다는 기분을 안겨주진 못한다. 게다가 손바닥만한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깥 세상은 답답하기만 하다. 그렇다면 사방의 모든 물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초경량비행기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세상의 모든 것이 내 발 밑에 있는 가운데 유쾌·상쾌· 통쾌함을 맛볼 수 있는 초경량비행기 체험.

‘초경량비행기라… 이거 정말 타도 괜찮을까? 취재하는 것도 좋지만 혹 잘못되면? 전쟁터를 누비는 종군기자로, 용감하게 취재하다 장렬한 최후를 마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나만 손해 아닌가. 그러니 이걸 타? 말아!’

그러나 그런 기우는 다 무지의 탓이요, 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비록 겉모양은 장난감 같은 것이 작고 볼품없어 보이긴 하지만 엔진이 꺼지는 아찔한 상황에도 수백m 가량 날아가면서 그런대로 착륙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비행기로 통하는 것이 바로 초경량비행기란다. 역시!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어찌됐든 그 작은 비행기를 보니 문득 오래 전에 봤던 영화 가 생각난다. 남녀 주인공이 경비행기를 타고 초원 위를 시원스럽게 날던 그 모습….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둘만의 시간을 만들어주는 무한의 공간…. 캬~ 생각만 해도 낭만 그 자체 아니던가.

어디 낭만뿐이랴? 무엇보다 텅텅 빈 하늘을 마음껏 날 수 있다는 게 경비행기의 또 다른 매력이다. 늘 우러러봐야만 했던 높은 하늘 위에서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들을 내려다 볼 때의 그 통쾌함이란…. 그동안 쌓였던 스트레스를 한방에 날려버리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백문이 불여일견이듯 백념(念)이 불여일행(行)이라고, 경기도 화성에 위치한 어섬비행장으로 향했다. 내륙에 있는 비행장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데 비해(활주로 주변에 산이 있으면 바람이 불 경우 소용돌이 현상이 일기 때문에 제약을 받는다고 함) 이곳은 사방이 확 트여있어 웬만한 바람에는 끄덕없어 비(초경량 비행기는 육안으로 적어도 5km 전방이 보여야 하는데 비가 오면 시야가 가리기 때문)나 눈, 태풍만 아니라면 언제든지 경비행기를 탈 수 있다. 때문에 어섬은 초경량비행기를 타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로 정평이 나 있다.

탁 트인 서해안고속도로를 타고(이곳은 전국의 도로 중 감시 카메라가 가장 적은 곳으로 제2의 자유로로 여기는 폭주족(?)들이 많으니 조심하기 바람) 비봉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곁눈질하지 않고 제부도로 향하는 길로 가다보면 나오는 어섬 비행장. 송산 삼거리를 지나 남양 송신소를 알리는 입간판을 보며 우회전 하면 이때부터 시골스런(?)느낌이 물씬 풍기는 한적한 도로가 나온다. 도로변엔 이 지역의 특산인 포도밭이 길 옆으로 즐비하다. 때문에 포도철이 한창일 때 가면 싱싱한 포도를 싼값에 살 수 있는 기회가 덤으로 주어진다.

건물 하나 없이 사방이 확 트인 비행장 주변의 황량한 모습은 조금 과장하자면 애리조나 사막같은 느낌이다. 그렇듯 첫인상이 이색적으로 다가온다. 갯벌과 어우러진 넓은 들판은 보는 순간부터 가슴이 뻥 뚫리는 느낌을 준다. 비행기 타러 들어가는 길도 특별히 차도랄 게 없다. 차가 가는 곳이 곧 도로라는 얘기다. 아무튼 이곳에 오면 비행기를 타기 전부터 이미 도심에서 늘 지지고 볶던 차들의 행렬에서 확실하게 벗어나는 느낌을 받게 된다.

또 하나, 막상 현장에 와서 보니 이곳은 단순히 초경량비행기만 타는 곳이 아닌 레포츠의 온상지라는 것. 한쪽에선 윈드서핑을, 또 다른 곳에선 패러글라이딩을 체험할 수 있는, ‘바람 맞는’ 레포츠를 즐기다 보면 그야말로 ‘바람이 끝~내줘요’ 소리가 절로 나올 듯하다. 게다가 말도 탈 수 있고 서바이벌 게임도 즐길 수 있다. 뿐만 아니라 투박하지만 정겨운 나무 다리가 이어진 고즈넉한 낚시터 풍경… 여기에 서해 낙조가 그림자를 드리울 때면 기가 막힌 한폭의 그림 그 자체다.

‘도전하는 자만이 하늘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하는 에어로피아 항공측의 도움을 받아 눈 딱 감고 도전해보기로 했다.

타기 전에 이것저것 물어가며 은근히 초경량비행기를 두려워(?)하는 기자의 눈치를 살피던 에어로피아 항공의 이규익 교관(38)은 대뜸 “자전거하고 오토바이를 보면 오토바이가 고장이 더 많듯 뭐든 간단할수록 고장이 적다”면서 “이 비행기는 심플하게 만들어져 있어 오히려 안전하다”며 일침을 놓는다. 보아하니 그 소리를 한두 번 한 것이 아닌 것 같다.

소인국에 온 걸리버가 된 느낌이네!

우선 초경량비행기에 대한 기초 상식 한가지를 말하자면, 초경량비행기는 자체중량과 연료용량이 1인승은 150kg에 19ℓ, 2인승은 225kg에 38ℓ로 규정되어 있다. 연료는 일반 무연휘발유를 사용하는데 1회 주유로 보통 2시간30분 정도 날 수 있다고 한다.

아무리 초경량비행기라지만 그래도 명색이 비행긴데 ‘에게~’ 소리가 나올 만큼 비행기 안은 두 사람이 간신히 탈 수 있는 좁은 공간이다. 혹 몸집이 큰 사람은 못 타는 것 아닐까? 염려마시라. 이규익 교관은 몸무게가 110kg이나 되는 사람도 태워봤다고 한다.

비행기를 탈 때는 가급적 장갑을 끼는 것이 좋다고 한다. 비행기를 점검하다 보면 손에 휘발유 등이 묻을 수도 있고 조종간 잡을 때 미끄러지지 않기 때문이다.

드디어 비행기에 올라 타 안전띠를 매고 나니 교관이 헤드폰을 착용하라며 건네준다. 답답한데 이런 건 왜 머리에 쓰나 싶지만 다 이유가 있었다. 비행기 시동을 켜니 그 소리가 장난이 아니다. 바로 옆에 앉은 교관과 대화를 나누기가 어려울 정도로 시끄럽다. 때문에 헤드폰을 끼고 거기에 부착된 마이크를 통해야만 얘기를 주고받을 수 있다.

비행기가 뜨는데 필요한 활주로는 70m. 이륙할 때 속도는 시속120km 정도란다. 이곳의 활주로는 여느 비행장처럼 잘 닦여진 아스팔트가 아니다. 듬성듬성 풀이 나있는 벌판 중 비교적 편편한 곳에서 비행기가 뜨고 내리다 보니 그 부분만 풀이 없어지면서 ‘자연산 활주로’가 저절로 만들어진 것.

윙윙거리는 엔진소리를 들으며 비행기가 활주로에 들어서는 순간 조마조마하긴 했지만 바퀴가 굴러가는 것 같더니만 어느새 ‘뿅’ 하고 공중에 떠 버린 게 아닌가? 생각보다 좀 싱거운 느낌이다. 초경량비행기의 평균 속도는 시속100km. 속도가 60km 밑으로 떨어지면 고도가 뚝 떨어져서 위험할 수도 있다고 한다.

땅위를 벗어난 비행기는 금세 하늘을 누비며 날고 있었다. 보통 떠 있는 높이는 200m가 적당하다고. 그래야 하늘에 떠 있다는 기분도 만끽하고 땅에 있는 것들도 비교적 잘 보인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막상 비행기를 타고 오르니 땅위의 모든 것들이 참으로 우습게(?) 보인다. 사람은 개미처럼 보이고 그 큰 덤프트럭도 장난감처럼 보이는 게 마치 소인국에 온 걸리버 같은 느낌이다. ‘아~ 이래서 초경량비행기를 타는구나’ 싶기도 했다.

이륙하기 전에는 답답하고 더운 느낌이었지만 하늘에서 쌩쌩 날다보니 문틈으로 시원한 바람이 여기저기 스며들어오니 이 또한 자연산 에어컨이 아닌가. 어떤 비행기는 아예 문짝을 떼어놓기도 한다니 좀더 스릴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문짝 없는 비행기를 타면 ‘기쁨 두배’가 될 것이다.

비행기를 타는 데 드는 비용은 비행 시간에 따라 다르다. 떠 있는 시간만큼 연료가 소모되기 때문에 말하자면 연료비를 내는 셈이다. 보통 10분 코스 3만원, 20분 코스 5만원, 30분 코스 7만원, 40분 코스 10만원이다. 40분이면 인천 송도까지 다녀올 수 있다. 그러나 초보자들은 10분 정도만 타도 초경량비행기의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한다.

비행기는 이용자의 취향에 따라 움직인다. 하늘에서 편안하게 아랫것(?)들을 보고 싶다면 얌전하게 날고, 스릴을 원하는 사람은 위 아래로 굴곡있게 움직여 마치 청룡열차를 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해준다. “어느 것을 원하든 사전에 슬쩍 귀띔을 해주면 알아서 모신다”며 장난스럽게 얘기하는 이규익 교관의 말을 명심해두면 유용할 듯.

하늘 위를 날다 이규익 교관이 중간에 내려준 곳은 닭섬. 갈대가 살랑대는 넓은 벌판에 고성처럼 생긴 낡은 해병대 초소(지금은 사용하지 않음)가 이국적인 풍경을 자아낸다. 이곳은 차로는 들어올 수 없고 오로지 비행기로만 들어올 수 있는 곳으로 마치 무인도에 온 듯한 느낌이다. 뿐만 아니라 이곳은 고라니와 꿩들이 돌아다닐 만큼 순수한 자연을 간직하고 있어 아이들과 함께 자연생태 탐험을 하기에도 아주 좋은 장소다. 기자는 여기서 선명하게 찍힌 꿩발자국을 볼 수 있었다. 때문에 각 환경단체들이 이곳을 자연생태계 보존지역으로 만들자고 목소리를 높인다는데 정말이지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이처럼 ‘나홀로 여행’의 진수를 만끽하고 착륙할 때는 아쉬움이 들었다. 그래서 그 짜릿한 맛을 한번 본 사람들은 이곳을 다시 찾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