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에 가면 이런 책이름들이 있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사람은 왜 사는가’, ‘왜 사는가 왜 죽는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톨스토이의 책은 스테디셀러가 되어 있는 모양이다. 우리 조병화 시인의 ‘왜 사는가’라는 에세이도 있다.
여기서는 우스개 이야기 하나로 시작하자. 내 일본인 친구의 말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남자는 무슨 재미로 사는가.
사귀어보면 알겠지만 일본인들은 묘한 재주가 있다. 얼크러진 사물을 잘 배열한다고 할까, 가지치기를 잘 한다고 할까. 요약하거나 갈래를 가르거나 하는 것에 익숙한 문화를 가지고 있다. 어려운 인생문제도, 철학문제도, 장사 수완도 그들 손에서는 5가지, 7가지, 아니면 33가지… 하는 식으로 정리되고 만다.
세상살이에는? 그들은 금방 두 가지 해결방법이 있다고 생각한다. 오다 노부나가 식이냐, 도쿠가와 이에야스 식이냐. 그래선지 일본 텔레비전들은 몇 년 간격으로 이들의 역사극을 번갈아 띄우고 있다. 미국의 스티븐 코비가 쓴 유명한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이런 일본식 정리법을 배운 것이라 짐작해 본다. 내가 95년에 쓴 책 ‘아내를 더 잘 사랑하는 77가지 방법’도 실은 그렇다.
열 살 연상인 그 친구가 이랬다. “남자의 도락에는 다섯 단계가 있다”고.
“첫째는?” “30대엔 돈벌이지” 했다. “40대엔?” 하니까, “여자”라고 했다. “그럴 듯하네” 하니까, “50대엔 파워(power)”라 했다. “무슨 말?” 하니까, “50 되면 권력자 재미가 보통 아니지. 회사전무가 되거나 독립해서 사장이 되거나 공무원도 국장이나 차관은 되거나 하니까” 했다. ‘사람을 쥐고 휘두르는 재미’라는 말이었다.
그리고 “60에는 도박”이라 했다. 그래서였던가, 50도 되기 전부터 그 친구는 서울에만 오면 워커힐에서 블랙잭을 하느라고 토요일 밤을 새웠다. 일요일 새벽 전화는 거의 그 친구에게서였다. “100만원만 꿔달라”고. 10년 전 그가 60에 심장마비로 별세한 것이 서울 도박을 마치고 일본의 집으로 간 다음날 새벽이었으니 도락치고는 대단한 도락을 즐기셨던 셈이다.
“70대엔?” 하고 묻자, 그가 최고의 도락, 최후의 도락이라면서 “식도락”이라 했는데 지금 60이 막 되고 있는 우리 친구들이 이것을 한참 즐기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는 부분이다. 일미회(逸味會)라는 모임까지 만들어 처음에는 스테이크 먹으러 다닌다고 했다. 그리고 자장면 먹으러 다닌다, 생선초밥 먹으러 다닌다 하더니 얼마 전부터는 “한식이 최고야” 했다. 청국장 잘한다는 다섯 집을 가보느라고 자동차 세 대로 사흘 동안 전국을 돌았다고도 했다. “이 재미 없이 어떻게 살아?” 하는 그들에게 “식도락은 최후의 도락이라더라” 한들 무엇하겠는가.
그것에 대답삼아 책 이야기를 하자. 과장이 아니라 난리난리인 세상에 요즈음 나는 책방 가는 재미로 산다. 금요일이면 교보문고에 가서 두세 시간 어슬렁거리는 것이다. 독자들이 버글거리는 속에서 “삶은 호기심일 뿐이다”는 명제를 얻기도 한다. 다행히 책 한 권이라도 마음에 들어 사게 되면 1층 비즈니스홀로 간다. 커피와 샌드위치 그리고 그 책이 식사다. 주인에겐 미안하지만 두 시간도 혼자다.
신간 영어원서가 많은 삼성역 반디서점에는 지금은 수리 중이지만 좋은 커피점도 있다. 커피가 서점 앞 스타벅스만큼 맛있고 싸기는 더 싸다.
외국에는? 책방 가는 재미로 간다. 도쿄에는 이케부쿠로 세이부백화점 지하에 리브로서점이 있다. 책을 사들고 나오면 바로 로바다야키와 생맥주로 유명한 요로가이칸이 있다.
신주쿠 기노쿠니야서점 아래층에는 아주 맛있는 돈가스집이 있다. 뉴욕에서는 링컨센터 앞 반스앤노블을 간다. 4층 커피숍을 올라가보시라. 벽에 가득 그려붙인 세계 작가들 초상에 그만 엎드려질 것이다.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팔로알토까지 내려간다. 거기에 하얀 2층 궁전, 보더스서점이 있다. 여기서 사흘쯤 굶어도 좋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미국 어느 서점에 써붙여 있던 말을 여기에 덧붙인다. ‘서재가 없는 집은 집이 아니다.’
박의상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