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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르고 나서]에세이 못쓰면 노벨상은 없다

입력 | 2002-11-15 17:26:00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1면)를 쓴 다치바나 다카시는 현대 일본의 유명한 지식인으로 거의 모든 분야의 학문을 섭렵했다고 알려진 인물입니다. 대학 교육과 현대 교양의 문제를 논한 이 책에서 ‘글쓰기’를 교양교육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고 지적한 대목이 인상깊게 다가왔습니다.

다카시는 도쿄대에서 96년부터 3년간 세미나를 열었는데 그 주제가 ‘조사 문서작성’이었답니다. 주변 교수들이 주제 선정에 의아해하자 그는 대답합니다.

‘이런 제목을 정한 것은 대부분의 학생에게 조사하는 것과 글을 쓰는 것이 앞으로의 생활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겨질 지적 능력이기 때문이다. 조사하고 글을 쓰는 것은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지적 직업에서 일생동안 필요한 능력이다. 저널리스트든 관료든 비즈니스맨이든 지적 노동자든, 대학을 나온 이후에 활동하게 되는 대부분의 직업 생활에서 상당부분이 조사와 글을 쓰는 데 할애될 것이다. 근대사회는 모든 측면에서 기본적으로 문서화하는 것으로 조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잡지에서 읽었던 한 서울대 교수의 얘기가 떠오릅니다. 그 표현을 빌리자면 우리나라 이 과학생들이 문제 푸는 연습만 한 탓에 에세이를 제대로 못 쓴다, 그래서 좋은 연구를 해도 에세이를 잘 쓰지 못해 유수한 잡지에 실리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문제가 해결 안되면 노벨상은 영원히 없다는 것입니다.

잘 아시겠지만, 글쓰기를 위한 자기 학습의 기본은 책읽기입니다. 특히 뛰어난 선학의 글을 읽고 배우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즐거운 체험이죠. 간결 담백한 언어의 맛, 풍부한 교양과 격조 높은 인문정신을 전해주는 근원 김용준의 전집(3면)을 소개합니다. 젊은 세대에겐 낯설지 모르나, 명사들 중에는 ‘다방면의 책을 읽고 인생으로서 쓴맛 단맛을 다 맛본 뒤에 저도 모르게 우러나오는’ 근원의 수필을 아껴가며 읽는 분들이 많습니다.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의 전우익옹도 열렬한 애독자시라네요. 전옹이 ‘평생을 두고 읽을 책’이라고 추천한 근원의 책에서 무엇을 어떻게 길어올릴 것인지는 온전히 우리들의 몫이겠지요.

고미석기자 출판팀장·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