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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만리장성보다 높은 '조훈현 벽'

입력 | 2002-11-17 17:26:00

조훈현 9단(왼쪽 앞)이 2국을 끝낸 뒤 자신의 3집반승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제공 한국기원


‘외화내빈(外華內貧)’.

삼성화재배 4강전을 앞두고 중국의 한 언론은 이런 표현을 썼다.

겉으론 8강에 6명, 4강에 3명을 진출시키며 어느 대회보다 우승확률을 높였지만 속으론 4강에 진출한 조훈현 9단이 나머지 3명을 각개격파시키지 않을까 걱정한 것이다.

중국의 4강 진출자인 왕레이(王磊) 8단, 후야오위(胡耀宇) 왕위후이(王煜輝) 7단 등은 모두 신예기사. 중국의 우려는 조 9단의 현란한 변신술과 강렬한 펀치 그리고 수많은 경험을 넘어서기에는 3명의 기사가 너무 젊다는 것이었다. 중국이 가장 아쉬워 하는 것은 조 9단과 가장 박빙의 승부를 벌일 수 있다고 평가받는 창하오(常昊) 9단이 8강전에서 왕위후이 7단에게 진 것. 중국으로선 자국 선수가 돌부리가 된 셈이다.

12, 13일 대전에서 열린 이 대회 4강전에서 중국의 우려는 그대로 현실로 드러났다.

조 9단은 왕위후이 7단을 2대0으로 꺾고 결승에 올랐다. 왕위후이 7단은 1, 2국에서 압도적 우세를 이룩하고도 조 9단의 ‘흔들기’에 실착을 거듭하며 패하고 말았다. 왕위후이 7단은 창하오 9단을 이긴 것에 대한 원성을 들어야할 처지에 놓인 셈.

조 9단의 결승 상대는 후야오위 7단을 역시 2대0으로 누른 왕레이 8단.

두 기사의 역대전적은 조 9단이 3대 1로 앞서고 있다.

조훈현 9단과 왕레이 8단의 역대 전적

일시

기전

결과

1997년 2월

8회 동양증권배 본선

조훈현 승

1999년 11월

4회 LG배 세계기왕전 8강

조훈현 승

2001년 6월

3회 춘란배 3, 4위전

조훈현 승

2002년 9월

1회 도요타 덴소배 16강전

왕레이 승

또 큰 대회 경험이나 조 9단의 현란한 변환술과 승부기질 등을 고려하면 조 9단이 객관적으로 우세하다. 그러나 왕레이 8단은 최근 최고의 성적을 내고 있다. 지난 9월 발표된 중국기사 랭킹에서 왕레이 8단은 창하오 마샤오춘 9단 등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조 9단과의 가장 최근 대국이었던 도요타 덴소배 16강전에서도 왕레이 8단은 쾌승을 거뒀다. 조 9단으로선 보기 드물게 힘 한번 못써보고 진 바둑.

중국 언론은 50대 50의 승부로 점치고 있지만 1988년 잉창치배, 2000년 후지쓰배, 2001년 삼성화재배 결승 등 결정적인 순간마다 극적인 역전극을 선보이며 중국의 발목을 잡아온 조 9단에 대한 우려는 여전하다. 과연 중국이 ‘조훈현 징크스’를 극복하고 2년여만에 세계대회 정상을 차지할 수 있을까. 결승 3번기는 내년 1월 14, 15, 17일 열린다. 장소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서정보기자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