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고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책상에 엎드려 잠을 자고 있다. 청소년기에 잠을 충분히 자지 못하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떨어지며 성격과 성장발달에도 영향을 준다.
‘엄마, 조금만 더요!’
오전 6시반, 베개를 부여잡고 절규하는 아이들. 몸은 다 컸지만 부모에겐 갓 태어나 아직 눈도 뜨지 못하는 강아지처럼 느껴진다.
요즘 청소년은 평일에 오후 11, 12시까지 깨어있고 다음날 오전 6, 7시에 일어난다. 급히 씻고 아침을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등교해 학교에선 하루종일 하품만 한다.
집에 돌아와서는 밤늦게까지 인터넷을 하며 ‘피곤하지 않다’고 버틴다. 휴일이나 주말에는 밤을 지새다시피 하고 정오까지 늦잠을 잔다.
현대인은 누구나 잠이 부족하지만 전문가들은 특히 10대 청소년의 수면부족이 심각하다고 경고한다. 많은 청소년이 만성적인 수면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것은 기분과 행동, 학교성적에 영향을 준다는 것. 청소년은 보통 많아야 6, 7시간을 자지만 많은 연구결과들이 10대, 심지어는 20대 초반까지 적어도 하루에 9, 10시간은 자야 한다고 말한다.
청소년이 밤에 피곤하지 않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들의 생체시계가 어렸을 때보다는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것에 맞춰졌기 때문. 그러나 학교의 등교시간과 각종 과외활동에 맞추려면 늦게 자도 일찍 일어날 수밖에 없어 수면부족이 되기 쉽다.
수면부족의 폐해는 심각하다. 일단 잠이 부족하면 공부를 잘하기 힘들다. 집중력이 떨어지며 간신히 집중한다고 해도 배운 것을 잊어버리기 쉽다. 기억의 형성은 잠을 자는 동안 일어나기 때문이다. 미국 브라운대의 수면연구가 매리 카스캐던 박사는 저서 ‘청소년의 수면 유형’에서 “학생들은 몸만 학교에 있고 뇌는 집의 베개 위에 있다”고 표현했다.
피곤한 청소년은 두살배기 아기만큼이나 심술궂고 변덕스러워진다. 동물실험에 따르면 수면부족은 공격적인 행동이나 폭력성과도 연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많은 연구결과가 잠을 덜 자는 아이들이 더 우울하다는 걸 보여준다.
한 실험에서는 10대 청소년에게 다양한 사진을 보여주고 그들의 감정적인 반응을 측정했다.
그 결과 잠이 부족한 아이들은 긍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시큰둥했고 부정적인 것에 대해서는 극도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들은 귀여운 아기 사진 등 누구나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도 별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수면부족이 병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병에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는 많다. 성장호르몬과 성호르몬은 수면 중에 분비된다. 또 수면부족이 계속되면 포도당대사가 잘 안돼 혈당이 올라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몸 속에 침입한 세균과 싸우는 면역체계의 이상을 가져올 수도 있다.
많은 전문가들과 부모들은 고등학교의 등교시간이 너무 이른 것이 청소년 수면부족의 주범이라고 주장한다. 미국 미네소타주에서는 주 정부가 나서 고등학교의 등교시간을 늦추기도 했다. 그 결과 교사들은 “아침시간에 조는 학생이 줄었다”고 말했고 학생들은 “잠을 더 많이 자고 아침을 챙겨 먹게 됐다”고 말했다. 실제로 학생들의 출석률과 졸업률이 높아졌다.
군대도 변하고 있다. 4월 미 해군은 기본적인 훈련이 이뤄지는 시카고의 그레이트 레이크 기지에서 병사들의 수면시간을 늘렸다. 10대 후반이 대부분인 이들은 그 이전에는 오후 10시부터 오전 4시까지 잤다.
해군은 처음에 오후 9시에 잠자리에 들도록 했었다. 그러나 해군 대위이자 정신과 의사인 제프 다이치 박사는 “9시에 불이 꺼지면 병사들이 누워 천장만 바라보고 있더라”며 “젊은이들은 그렇게 일찍 잠이 들지 않으며 제일 졸린 시간이 오전 4시에서 6시 사이”라고 보고했다.
그는 또 “너무 일찍 자게 하지 말고 8시간은 자도록 해 달라”고 건의했다. 해군이 그 의견을 받아들여 병사들은 훈련기간에 오후 10시부터 다음날 오전 6시까지 자게 됐다.
의사들과 수면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수면시간을 늘리는 데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충고한다. 평일에는 수면시간을 정해 놓고 그 시간을 맞추도록 지도한다. 휴일에도 그 범위를 많이 초과하지 않도록 한다. 또 평일에 TV보는 시간을 제한하고 전화통화나 인터넷 사용시간도 제한한다. 실천하기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일단 해 보면 확실히 달라진다.
카스캐던 박사의 수면실험에 참가하느라 하루에 9시간을 잔 한 소년은 말했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요. 전 이 실험이 끝나도 계속 이렇게 하겠어요.”
(http://www.nytimes.com/2002/11/05/health/children/05SLEE.html)
채지영기자 yourca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