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低주가→돈가뭄… 코스닥 ‘죽을 맛’

입력 | 2002-11-18 17:57:00



《흔히 주가는 ‘기업 펀더멘털의 그림자’라고 한다. 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주가는 기업 펀더멘털을 뒤따라가는 종속변수라는 뜻이다. 그런데 증시에서는 간혹 ‘그림자가 본체를 뒤흔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난다. 주가가 거꾸로 기업 펀더멘털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

최근 한국 증시에는 낮은 주가 탓에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으며 기업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코스닥 등록기업이 적지 않다. 아직 등록하지 않은 기업조차 코스닥 부진에 큰 영향을 받는다.

종속변수인 것처럼 보였던 주가(코스닥)가 오히려 한국 벤처업계의 숨통을 짓누르는 주요 변수 노릇을 하는 셈이다.

▽주가가 기업을 바꾼다〓1996년 선도전기의 유상증자 성공은 펀더멘털이 주가를 바꾸는 게 아니라 주가가 펀더멘털을 바꾼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이 회사는 매연저감장치(경유 차량의 매연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장치) 개발을 재료로 95년 1500원선이었던 주가가 96년 15만원까지 치솟았다. 그러나 이 장치는 아직까지도 상용화에 성공하지 못했으며 실제 회사 실적에도 전혀 영향을 주지 않았다.

그런데 잔뜩 오른 ‘거품성 주가’가 이 회사의 재무구조를 바꿔놓았다. 선도전기는 높은 주가를 바탕으로 96년 4월 주당 2만5400원을 받고 유상증자에 성공했다. 이 회사는 증자 자금을 바탕으로 95년 145%였던 부채비율을 단숨에 60.4%로 낮추고 금융비용 부담률도 3.2%에서 1.1%로 크게 줄였다.

▽부진한 코스닥, 벤처의 숨통 누르다〓올해 정반대의 현상이 코스닥에서 나타났다. 올해 코스닥은 최악의 한해라는 평가가 있을 만큼 낮은 주가에 고전 중이다.

반응은 자금시장에서 가장 빨리 나타났다. 주가가 낮은 기업에 대한 자금줄이 말라버리면서 존립 근거가 흔들리는 회사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

2∼3년 전 공모주 청약으로 받은 돈은 바닥난 데다 주가가 워낙 낮아 유상증자는 꿈도 못 꾼다. 반대로 코스닥 벤처기업의 3·4분기(7∼9월) 부채비율은 지난해 51.2%보다 훨씬 높은 59.9%까지 올라갔다.

자금이 말라버리니 신규투자를 하는 기업도 거의 없다. 코스닥 등록기업 가운데 최근 의욕적으로 투자를 하는 기업은 열 손가락에 꼽힐 정도.

심지어 코스닥에 등록하지 않은 기업에까지도 영향이 퍼졌다.

주가가 워낙 낮아 벤처기업의 코스닥행이 여의치 않자 미등록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자금이 크게 줄어든 것. 올해 3·4분기 KTB네트워크 산은캐피탈 한국기술투자 무한투자 등 4대 벤처캐피털의 벤처투자액은 47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816억원의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올해 1·4분기(511억원) 및 2·4분기(593억원)와 비교해도 감소 추세.

한 인터넷 보안솔루션 업체 사장은 “지난해만 해도 이 정도 실적이면 훨씬 높은 주가와 더 많은 자금을 보장받았다”며 “올해에는 낮은 주가가 경영의 발목을 잡아 회사 꾸리기가 훨씬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완배기자 roryrer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