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씨
“한국 대표로 국제회의에 참석할 때는 우리나라 이익에 몰두했는데 국제기구에 근무하다 보니 회원국 전체의 발전을 우선 생각하게 돼요. 중립적이고 비영리적인 국제전기통신연합(ITU)의일원으로 선진국과 개도국 사이에 깊어가는 정보통신 분야의 골, 디지털 디바이드(digital divide)를 메우는 데 기여하는 것이 나의 임무입니다.”
유엔 전문기구인 ITU 아시아-태평양지부의 김은주(金恩珠·42·사진) 수석 자문관은 근무지인 태국 방콕에서 여러 차례 주고받은 e메일 인터뷰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김 수석이 ITU의 정식 직원(P5)이 된 것은 2000년 4월. 어릴 적부터 유엔에서 활약하는 꿈을 키워왔던 그는 인터넷 홈페이지(www.itu.int)에서 채용공고를 보고 한국의 정보통신부를 통해 지원서류를 보냈다. 10여년간 ITU 주요 회의에 적극 참여해 온 그였기에 ITU측은 면접 절차도 없이 채용했다.
김 수석은 영국 런던 시티대학의 박사학위 논문에서 ‘ITU와 한국’을 사례로 다뤘을 정도로 ITU와 관계가 깊었다. 귀국해 체신부(현 정보통신부)장관 자문관으로 일할 때는 한국 대표로 ITU를 수없이 드나들었다. 국내 기관들을 대상으로 ITU의 표준화 활동 등을 소개하는 강의도 여러 차례 했다.
그가 스위스 제네바에 있는 ITU 본부를 마다하고 지역사무소 근무를 자청한 것은 각박한 자본주의와 개인주의 분위기에서 벗어나 개도국에 정보통신의 혜택이 돌아가게 하는 일을 원했기 때문. 김 수석은 “요즘 여성과 장애인, 벽지 주민들이 정보통신 시설 및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도록 신기술을 도입하고 정책을 실시하라고 회원국들에 적극 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부탄의 시골 학교와 장애인센터에 한국의 중고 컴퓨터를 보내주는 일도 추진 중이다.
현재 김 수석은 한국 일본 중국 인도를 포함한 7개국의 ITU 관련 업무를 총괄한다. 그래서 동료들은 그를 ‘25억명의 대표’라고 부른다. 또 아태지역 43개 회원국의 정보통신정책에 관해 자문해주고 있다. 김 수석은 “한국이 차세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등 일부 국제표준화 분야에서 선두에 서 있고 ITU의 표준제정에도 활발히 참여하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면서 “요즘 관심분야는 e메일 주소와 전화번호를 상호 호환시키는 넷식별번호체계(ENUM) 분야의 표준화”라고 귀띔했다.
10년 전 정부기관이 선정한 ‘국제 전문가 100인’에 뽑히기도 했던 김 수석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고 세계 어디에서나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바로 국제인”이라고 강조했다.
뉴욕〓홍권희특파원 konihong@donga.com
▽김은주씨는…▽
▶1960년 서울 출생 ▶학력:한국외국어대 신문방송학과 졸, 서울대 대학원(언론학 석사), 영국 시티대 대학원(정보통신정책 및 국제기구 석사, 박사) ▶경력:1990∼94년 체신부장관 자문관, 94∼95년 런던시티대 조교수, 96∼99년 런던 소재 글로벌커뮤니케이션(ICO) 규제정책담당, 2000년 ITU 아태지부 수석 자문관 ▶국제기구 지원자를 위한 조언:“외국어와 함께 관심분야에 대한 기본실력을 갖춰야 한다. 업무뿐 아니라 대인관계가 더 중요할 때가 많으므로 세계 각국의 문화를 존중하고 다양한 업무관리 방법들을 배우며 세계 속에서 더불어 살아간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ITU란▽
당초 유럽 국가들의 전신전화서비스를 위한 주파수 할당 및 표준 제정을 위해 설립된 가장 오래된 국제기구. 세계의 정보통신분야를 총괄하는 이 분야 최대의 국제기구다. 189개 회원국과 600여개의 민간회원이 있다. 선·후진국간 정보통신 발달의 격차를 줄이기 위해 1992년 개발분야(BTD)를 신설했다. 본부는 제네바에 있고 세계 5개 지역을 대표하는 지역사무소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