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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vs 디지털]베토벤 크로이처 소나타

입력 | 2002-11-19 19:08:00

오이스트라흐 오보린 협연 '크로이처' 음반(왼쪽)과 뒤메이 피레스 협연의 베토벤 소나타집. 사진제공 유니버설뮤직


학창시절, 늦가을에 기온이 갑자기 영하로 떨어지면 ‘크로이처’를 꺼내 듣곤 했다. 걷잡을 수 없이 달려나가는 1악장의 열정적인 질주를 듣고 나면, 살갗이 따끔따끔해지면서 한겨울 북풍도 헤쳐나갈 ‘열(熱)’을 얻는 것 같았다.

이 작품을 ‘열’로 본 것은 같은 제목의 중편소설을 쓴 톨스토이도 마찬가지였다. 중편 ‘크로이처 소나타’에서 베토벤의 소나타는 40도 신열과도 같은, 남녀간의 어둑한 열정을 자극하는 촉매로서의 상징이 된다. 베토벤의 이상과 인류애에 찬동했던 톨스토이도 베토벤이 내뿜는 열정의 관념은 어딘가 ‘부도덕’ 한 것으로 보았던 모양이다. 그가 오늘날의 록이나 댄스음악을 듣는다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기자가 학창시절 들었던 음반은 오랫동안 이 걸작의 ‘결정판’처럼 여겨졌던,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와 피아니스트 레프 오보린의 협연반(필립스·1962 녹음)이다. 다소 건조한 느낌을 주는 녹음은 60년대 초반임이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선명하다. 오이스트라흐 특유의 맵고 두터우며 맹렬한 음색을 따라가고 나면 고개가 설레설레 흔들어진다. 이와 같은 명반은 앞으로도 당분간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

바이올리니스트 이츠하크 펄만과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의 협연반 (EMI·1998 녹음)는 전적으로 아르헤리치가 주도하는 음반이다. 얌전한 편인 펄만의 음색마저 롤러코스터를 타듯이 연주하는 아르헤리치의 ‘위험한 도전’에 속수무책으로 끌려간다.

기자의 책상 앞에 이제 막 도착한 음반 중에서는 바이올리니스트 오거스탱 뒤메이와 피아니스트 마리아 호앙 피레스가 협연한 베토벤 소나타 전곡집(DG·3장·2002 녹음)을 꼽을 만하다. ‘벨기에 바이올린 악파’의 현역 대표자 중 하나라는 점을 증명하듯, 그의 음색은 품위있고 유연하며 잘 닦여 있다. 활달하게 울려나오지만 선굵은 오이스트라흐의 활달함에 비하면 다소 ‘뺀질’한 것도 사실이다. 다소 템포를 당겨 잡은 뒤 맹렬하게 밀어붙이는, 아닌 게 아니라 톨스토이의 소설을 연상시키는 데가 있는 ‘크로이처’ 다.

휙 달려나갈 부분에서 멈칫 숨을 잡아끄는 피레스의 ‘루바토’(자의적 템포변화)는 고수(실란트로)의 맛에 길들지 않은 사람이 그 특이한 양념의 향을 피하게 되듯 저항감을 갖게 하지만, 듣다보면 점차 묘한 ‘풍미’로 변한다.

마침 뒤메이는 22일 LG아트센터에서 첫 내한 독주회를 갖는다. 브람스 소나타 3번, 야나체크의 소나타와 함께 ‘크로이처’ 도 연주할 예정.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