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겼다! 파아파아파아파아, 두근! 두근! 두근! 1500미터와 5000미터에서 우승! 드디어 경성에 올라갈 수 있게 됐다! 조선 신궁(神宮) 대회에 경남지구 대표로 출전할 수 있다! 두근! 두근! 이제 1만 미터만 남았다. 3위안에 들기만 하면 출전권을 딸 수 있는데, 두근! 두근! 나는 우승한다. 반드시 우승한다. 파아파아파아파아, 아직도 숨이 차다, 파아파아파아. 운동화 끈을 풀었다 다시 묶고 있는데, 다른 선수들과 선수 가족들의 시선이 내 등에 모이는 것을 느꼈다. 두근! 두근! 안 되겠다, 심장이, 두근! 두근!
우철은 보자기 위에 누워 손발을 쭉 뻗었다. 파아파아파아파아, 내 숨. 두근! 두근! 내 심장. 밀양강 철교를 건너는 기차 같다. 칙칙폭폭 칙칙 폭폭 뒤! 하얀 구름이 달리고 있다. 그 때 불쑥 소리없는 말이 다가왔다.
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싶다.
그 말은 순식간에 사람들의 환성과 북과 날나리와 손뼉 소리를 몰아내고 우철의 내면을 정적으로 채웠다.
야, 우철이 니 아나? 조선에도 국기가 있다.
뭐라?
나도 본 적은 없지만, 형이 설명해 주더라. 일장기는 하얀 바탕에 빨강이다 아이가. 태극기는 한 가운데 원이 빨강하고 파랑으로 나뉘어 있다.
태극기라고 하나?
그래, 삼국 시대에 절에서 문양으로 사용한 것이 기원이라고 하더라. 네 귀퉁이에 선이 있다고 하던데, 왼쪽에 있는 세 개하고 네 개 있는 선은 무한을 뜻하고, 오른쪽에 다섯 개하고 여섯 개 있는 선은 빛을 뜻한다고 형이 그라더라.
가슴이 조여드는 듯 아파 입을 다물었다. 우홍이도 말이 없었다. 아픔 그 안에 감미로움이 있어 그 감미로움이 우리를 기적 같은 순간으로 이끌었다. 우리는 바람 속에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았다. 내 두 눈과 우홍의 두 눈으로 분명하게 보았다. 그 순간은 찾아왔을 때와 똑같이 천천히 소멸해 갔다.
구름은 아까보다 빨리 흐르고 있는데 내 심장은 이제 그리 빨리 툭탁거리지는 않는다. 멀게, 희미하게, 지금이라도 멈출 것처럼 천천히, 두근…두근…두근….
경기 시작을 알리는 소리에 우철은 일어섰다. 그리고 고동의 리듬에 맞춰 출발선을 향해 걸었다. 죽을만한 가치가 있는 일을 하고 싶다. 우철은 누구와도 공유할 수 없는 침묵의 말을 들었다.
유미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