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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할리우드는]값싸고 촬영쉽고…디지털,영화街 접수한다

입력 | 2002-11-20 17:31:00

100% 디지털로 제작된 영화 '스타 워즈: 에피소드 2-클론들의 습격'



“블루 페리, 제발 나를 ‘진짜 소년’으로 만들어주세요.”

(영화 ‘A.I.’에서 로봇 소년 데이비드가 바다 밑 블루 페리 동상 앞에서 기도하는 장면)

로봇 소년 데이비드는 끝내 진짜 소년을 대체할 수 없었는데, 0과 1의 조합인 ‘디지털 시네마’는 ‘영화’와 동의어로 쓰이다시피 하는 ‘필름’을 대체할 수 있을까. 무성에서 발성으로, 흑백에서 컬러로 진화해온 영화 기술 변천사의 현재 챕터는 필름에서 디지털로의 전환이다.

#1: 디지털, 주류에 입성하다

디지털 영화는 영화사들의 주도로 도입된 다른 기술들과 달리, 스튜디오 시스템에 구속되기 싫은 제작자들, 저예산 영화를 만드는 독립영화 감독들이 선택한 ‘자유의 무기’였다.

시스템 밖의 무기가 ‘체제 안’으로 흡수된 것은 디지털 영화의 비용 절감이나 촬영의 효율성 등 때문. 조지 루카스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2’를 100% 디지털 영화로 만들어 제작비를 300만 달러쯤 절감했다. 촬영할 때 거의 10분 단위로 갈아 끼워야 하는 필름과 달리 디지털 테이프는 1시간이상 연속 촬영이 가능하다. 필름을 이용한 촬영은 원하는 장면을 100% 얻었는지 곧장 확인하기 어려운 ‘추측의 예술’이지만, 디지털 촬영은 그런 난점을 없애준다. 덕분에 디지털 영화는 주류 무대에서 점점 많은 추종자들을 확보해가고 있는 중이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멕시코’를 100% 디지털 영화로 만들 예정이며, 스티븐 스필버그도 루카스 필름과 함께 제작하는 ‘인디애나 존스 4’를 100% 디지털 영화로 만드는 것을 고려중이라고 말했다.

#2: 디지털로 찍고 아날로그로 풀고?

올해 5월, 디지털 프로젝터를 갖추지 않은 극장에는 ‘스타 워즈: 에피소드 2’를 주지 않겠다는 조지 루카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미국에서 ‘스타워즈: 에피소드 2’를 상영한 3161개 극장 중 디지털 상영관은 60여 곳에 불과했다. 극장이 바뀌지 않는 한, ‘디지털 시네마’ 시대의 실현은 불가능하다. 미국을 포함, 전 세계에 디지털 프로젝터를 갖춘 극장은 116개. 한 상영관 당 15만∼20만 달러가 드는 고가의 설치비가 디지털 설비의 확산을 가로막고 있다.

영화 제작 주도권을 고집 센 감독들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영화사들의 망설임도 ‘디지털 시네마’의 발걸음을 늦추는 한 요인. ‘스타 워즈: 에피소드 2’ 개봉 며칠 전에 마음에 안드는 70개의 장면을 바꿔버린 조지 루카스처럼 감독들이 디지털 영화의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려 든다면, 영화사로서는 제작이 끝도 없이 진행되는 거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3: 위성방송이 극장을 만났을 때

갈 길이 멀지만, 디지털 시네마가 실현되면 극장의 개념도 달라진다. 디지털 프로젝터를 설치해 위성으로 프로그램을 쏘면 극장에서 영화 뿐 아니라 콘서트, 브로드웨이의 연극, 스포츠 경기도 상영할 수 있다. 미국 극장 체인인 리걸 시네마는 회사 상장을 위해 월 스트리트에서 마련한 설명회에서 극장에서 영화 뿐 아니라 콘서트와 스포츠 경기를 상영하는 대안적 프로그래밍을 도입하면 수익률이 2∼3배 증가할 수 있다고 예측했다. 위성방송과 극장의 이점이 결합되는 것. 멀티플렉스가 영화 상영을 넘어 ‘현대의 만신전’이 될 날도 멀지 않았다.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