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철학자인 지명관(池明觀)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 위원장이 최근 MBC가 방영한 한일합작드라마 ‘소나기, 비갠 오후’의 일본어 대사 방영에 대해 그 부당함을 주장하고 나섰지만 그의 ‘고독한 투쟁’은 또 다시 ‘대답없는 메아리’로 돌아올 것 같다.
방송위원회가 21일 이 드라마에 대해 “방송 심의 규정에 일본어 방영 금지 조항이 없으므로 제재할 수 없으며 왜색이 지나치지 않는 데다 한국에 우호적이어서 심의 규정에 저촉되지 않는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MBC는 지난 번 ‘프렌즈’ 때에도 방송위로부터 아무런 제재를 받지 않았다.
지 위원장은 15일밤 MBC가 ‘소나기,…’를 방영하면서 일본어 대사를 여과없이 내보낸 직후 A4용지 10장에 이르는 장문(長文)의 편지를 써 문화관광부 장관과 방송위원장, MBC사장에게 보냈다.
그는 MBC를 일제 강점 직전의 ‘일진회(一進會)’로까지 비유하면서 역사교과서 왜곡문제로 한국의 일본 문화 개방 일정이 늦춰지자 일본측이 방송사를 통한 각개 격파에 나섰다고 비판했다.
지위원장은 ‘소나기…’ 방영에 앞서 한일합작드라마를 국내에서 방영할 수 있도록 문화부에 건의해 이달 중 결론을 내릴 예정이었다. 하지만 방송사가 일방적으로 방영을 결정하자 분노를 참지 못한 것이다. ‘원칙 부재’요 ‘위원회의 존립근거 자체를 부인하는 막무가내식 행태’라는 것이다.
지위원장은 ‘프렌즈’ 방영 때에는 사의 표명으로 맞섰다. 하지만 문화부나 방송위 등 정부와 감독기관은 사실상 MBC측의 행위를 ‘묵인’해 주었다. ‘소나기…’는 후지TV에서 극본과 연출을 맡아 일본어 비율이 더욱 높아졌다.
지 위원장은 “일본어 대사 방영을 규정이 없다는 이유로 허용하면 일본 영화나 가요 방송도 제재할 수 없게 된다”고 안타까움을 토로하면서 “이제 한일문화교류정책자문위원회는 그 존립 근거 자체가 없어졌으며 위원장직 사퇴는 물론, 위원회도 더 이상 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