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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화제도서/파리에서]파리의 가을 ‘문학의 계절’

입력 | 2002-11-22 17:37:00


파리의 가을은 수많은 문학상의 발표 속에 깊어만 간다. 10월 28일에는 프랑스 문학상 중 가장 관심의 대상이 되는 공쿠르 문학상이 가이용 광장의 두루앙 식당에서 발표됐다. 여느 해처럼 올해도 매스컴의 취재열기가 뜨거웠다. 아마 한 해 중 책 소식이 신문 1면과 TV 저녁 뉴스의 톱을 장식하는 것은 문화의 나라인 프랑스에서도 이 때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공쿠르 형제의 유언에 따라 18세기 문학살롱의 전통을 되살리고자 1903년 제정된 이 문학상은 프랑스 문단과 출판계에 큰 영향을 끼쳐온 유서 깊은 상이다. 무보수의 종신회원 10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들은 10월말쯤 두루앙 식당의 2층 특실에 모여 그 해의 수상작을 선정, 발표한다. 올해 공쿠르 상은 3차 투표 끝에 소설과 수필의 경계를 넘나들며 독특한 ‘사유의 문체’를 선보인 파스칼 키나르(54)의 ‘마지막 왕국’ 중 제 1부작 ‘방황하는 그림자’(그라세 출판사)에 돌아갔다. 키나르의 이번 수상 작품은 전통적인 소설 작법을 따르지 않고 지나친 엘리트주의적 성향을 가진 작품이라 공쿠르상에 걸맞지 않다는 논란도 일었지만, 2000년 ‘로마의 테라스’로 이미 ‘프랑스 아카데미 소설 대상’을 거머쥔 역량의 작가 키나르는 결선투표에서 총 6표를 얻어 수상의 영예를 차지했다.

수상작 상금은 단돈 ‘10유로’. 하지만 작가에게는 더 없는 명예를, 출판사에는 확실한 판매수익을 보장하기 때문에 갈리마르, 그라세, 쇠이유 같은 대형출판사들이 하나같이 공쿠르 수상 결과에 민감하다. 지난해 갈리마르의 2년 연속 수상으로 심기가 불편했던 그라세는 97년 파트릭 랑보의 작품 이후 5년만에 수상작을 내게 되어 희색이 역력했다. 71년 이후의 공쿠르상 수상결과만 놓고 볼 때 그라세는 총 10회를 차지함으로써 갈리마르의 9회를 넘어서게 되었다.

이외에 눈여겨볼 만한 주요 문학상으로는 공쿠르 상과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발표되는 르노도상(1925년 제정), 11월 초 호텔 크리용에서 22명의 여성 편집인이 모여 수상작을 결정하는 페미나상(1904년 제정)과, 이 상의 발표를 기다리며 점심식사를 하던 언론인들이 만들었다는 엥테랄리에상(1930년 제정)이 있다. 이들 문학상들은 동일한 작품에 중복 수여되지 않아 서로 보완적 역할을 한다. 금년 르노도상은 공쿠르상 최종후보에 올랐던 제라르 드 콘탄츠의 ‘아삼’(알뱅 미셀 출판사)이, 페미나상과 엥테랄리에상은 18세기 문학 연구가인 샹탈 토마의 첫 역사 소설 ‘왕비에게 작별을’(쇠이유 출판사), 곤자그 생브리의 자전 소설 ‘브라이튼의 노인들’(그라세 출판사)이 각각 차지했다.

그러나 올해도 주요 문학상은 대부분 대형 출판사들이 독식, 문학상 수상에 이들의 입김이 작용한다는 항간의 의혹을 씻지는 못했다.

임준서 프랑스 LADL 자연어처리연구소 연구원 joonseo@worldonline.f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