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다른 초기 증상이 없는 유방암은 조기 발견이 최선의 치료책이다(위).X선 사진에 나타난 유방암 병변. 흰 부분이 종양이다(아래).
◇ 가족력 환자 전체 20~30%, 대장암도 10~15%… 20대부터 정기검진 꾸준한 관리 필요
대장암 환자인 김희석씨(28) 어머니는 45세 때 아들과 같은 대장암 증상으로 우측 대장 절제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 외할머니 역시 55세 때 병명은 확인하지 못했으나 복부에 혹이 생겨 혈변을 보다 돌아가셨다. 정확한 진단을 내리긴 어렵지만 그 증상만으로 본다면 대장암을 앓았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김씨 형제들이 병원으로부터 대장암 단체 검진을 권유받은 것도 바로 이런 가족력 때문이다. 김씨 형제는 2남 3녀로 모두 5명. 대장 내시경 검사를 시행한 결과, 형제 중 공무원인 큰형(37)과 시집간 둘째 누나(35)에게서 대장암이 발견됐다. 다행히 김씨를 포함한 세 명의 환자가 모두 대장암 초기여서 간단한 수술 후 완치가 가능했다.
암은 가족력의 영향이 가장 큰 질병으로 알려져 있다. 암 가운데서도 대장암과 유방암이 특히 그렇고, 이외에 난소암, 위암, 폐암 등도 가족력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암과 마찬가지로 대장암과 유방암도 별다른 초기 증상이 없는 데다, 혈변을 본다든지 유방에 멍울이 잡히는 등 이상 증상이 발견되면 이미 암이 진행된 상황이므로 조기 발견이 최선의 치료책.
▲형제자매 중 한 명만 있어도 검진을
가족성 대장암은 전체 대장암 중 10~15% 정도로, 이에는 가족성 용종증과 유전성 비용종증 대장암이 있다. 가족성 용종증은 서양에서는 1만명당 1명, 일본에서는 2만명에 1명꼴로 발생하며 전체 대장암의 약 1%, 비용종증 대장암은 5~10%로 추산된다.
특히 대장 속에 100개 이상의 혹이 발생하는 가족성 용종증은 한 사람에게서 발견될 경우 그 가족 전체가 진단을 받아야 한다. 가족성 용종증은 대장 전체에 ‘용종’(혹·POLYP)이 퍼져 있는 것으로, 그대로 내버려두면 30대 후반에 대장암으로 변하며, 40대 초반에는 사망에까지 이르는 무서운 질병이다. 이 병의 치료법은 대장과 직장 전체를 잘라낸 다음 소장의 일부로 직장을 만들어 이어주는 방법인 ‘전 대장 절제술’이 유일하다.
한솔병원 복강경수술센터 김선한 소장은 “가족성 용종증 환자는 늦어도 25세 이전에 반드시 수술을 받는 것이 좋다”며 “적절한 치료를 하지 않고 내버려두면 한창 젊음을 누릴 20대부터 보통의 암과 똑같은 경과를 거치면서 진행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세계보건기구는 대장암 가족력이 있는 가족에게 25세부터 매년 대변 잠혈 검사를, 2년에 한 번 대장 내시경 검사를 시행하고, 대장암 발생 확률이 높아지는 35세 이후부터는 매년 대장 내시경 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하고 있다.
미혼의 이선영씨(28)는 최근 어머니가 유방암 2기 진단을 받자, 자신도 병원을 찾았다. 어머니 치료 문제에 대한 상의와 함께 자신도 정밀 건강검진을 신청했기 때문. 가족 중에 유방암 환자가 있으면 그 자녀도 유방암에 걸릴 위험이 크다는 전문의의 충고에 따라 가벼운 마음으로 검사대에 올라선 그녀, 하지만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조직검사 결과 그녀의 오른쪽 유방에 종양이 발견된 것. 선영씨의 증세는 어머니보다 오히려 더 진행된 상태였다.
어머니나 자매 중 유방암 환자가 한 사람 있으면 유방암에 걸릴 위험성은 일반인에 비해 2배 정도 높으며, 두 사람이 있는 경우는 4배 정도 높다. 만약 이들이 폐경 전에 진단을 받았거나 양쪽 유방에 다 암이 있는 경우에는 그 위험도가 9배 이상 높아진다. 가족력이 있는 유방암 환자는 전체의 20~30% 정도 되지만, 실제로 유전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유방암은 전체의 약 5~10%이다.
실제 ‘가족성 유방암’이 대물림된다는 사실이 최근 국내에서도 유전자 검사를 통해 확인되기도 했다. 서울아산병원 외과 안세현 교수는 “지난해 10월부터 올 8월까지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으면서 자신도 유방암에 걸린 가족성 유방암 환자 39명을 대상으로 유전자 검사를 실시한 결과, 9명(23.1%)이 유방암 유전자(BRCA1, 2)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지금까지 미국 등 서양인의 가족성 유방암은 BRCA라는 유전인자에 의해 유전된다는 사실이 확인됐지만, 우리나라에서 유방암의 유전 가능성이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
특히 주목할 점은 유방암의 발생에 관여하는 많은 유전자들이 연구되고 있지만, 가족력이 있는 여성들에게만 BRCA1, BRCA2 유전자 변이가 관찰된다는 사실이다. 이들 유전자 변이가 있는 사람은 유방암에 걸릴 확률이 70% 이상 된다는 보고도 있다.
암의 발생에는 발암 유전자, 종양의 성장을 억제하는 유전자, 그리고 이들을 조절하는 유전자 등 세 가지 유전자가 관여한다. 이 유전자들이 어떤 외부 자극에 의해 변이가 생기면 암이 발생하게 된다.
▲ 초기 증상 없어 조기 발견이 최선책
대장 복강경수술 장면. 가족성 대장암은 전체 대장암 중 10~15%를 차지한다.
한유외과 함희원 원장은 “최근에는 유방암 가족들에게 BRCA1, BRCA2 유전자 검사를 실시해 변이가 있는 경우 유방암 예방 효과가 있는 타목시펜을 투여하기도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식생활을 개선하고 정기검진을 통해 조기 발견에 힘쓰는 것”이라며 “가족 중 유방암 환자가 있으면 20대 초부터 유방 관리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이 효과적이고 경제적인 방법”이라고 권고한다. 가족력이 있을 경우에는 20대부터,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40세 이후부터 1, 2년에 한 번 의사의 진찰과 유방 X선 검사를 받아보는 것이 좋다.
위의 사례처럼 가족성 암으로 드러난 유방암이나 대장암 환자들은 보통 암 발생 유전인자를 물려주었다는 사실 때문에 자녀들에게 죄책감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암의 발생에는 가족력만이 아니라 외적인 환경적 요인이 더불어 작용한다. 정기검진을 받고 담배 등 유해환경 요소를 피하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보건복지부의 발표에 따르면 대장암과 유방암은 생존율이 높은 암 중의 하나로 조기에만 발견한다면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질환이다. 특히 가족력이 있을 경우에는 정기검진을 통해 꾸준히 관리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강서미즈메디병원 유방센터 김도일 과장은 “유방암으로 진단되는 환자 중 80% 이상은 가족 중에 유방암에 걸린 사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유방암 가족력은 유방암의 발병 가능성을 높여주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유방암 환자가 가족 중에 없다고 해서 정기검진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최영철 주간동아 기자 ftdo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