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하로 떨어진 기온에 칼바람까지 몰아쳐 스틱도 제대로 잡기 힘들었다. 그래도 하얀 입김을 뿜으면서 열심히 뛰어다니는 후배들을 보며 달리고 또 달렸다.
한국여자하키의 대들보 이은영(28·KT·사진)은 24일 호주 퍼스에서 개막되는 최고권위의 세계여자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한다. 21일 출국한 그는 유종의 미를 다짐했지만 여전히 힘겨운 주변 여건 속에서 속이 상할 수 밖에 없었다.
전국체전이 끝나고 17일 소집된 대표팀은 그동안 여관방을 전전하며 훈련해야 했다. 전용 버스가 없어 숙소에서 훈련장인 성남하키장까지 걸어다녔고 태릉선수촌 공사 관계로 웨이트트레이닝은 꿈도 꾸지 못했다. 간단히 몸을 푸는 정도로 훈련을 마치고 남자고교팀과 몇 차례 연습경기를 가진 게 고작.
93년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국내 최다인 A매치 171경기에 출전한 이은영은 94년과 98년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의 금메달을 이끌었고 96년 애틀랜타올림픽 때는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화려한 성적과는 달리 선수 시절 내내 비인기종목의 설움을 겪은 이은영은 자신의 고별무대를 앞두고 또다시 힘든 나날을 보내야 했다.
“어제 오늘 일도 아닌데요 뭐. 앞으로 계속 고생할 후배들이 안쓰러울 뿐이지요.”
이번 대회에서 한국의 목표인 6강 진입을 이루고 후회없이 떠나겠다는 이은영은 은퇴 후 소속팀 KT의 사무직원으로 일하며 같은 하키선수 출신 김윤과 결혼할 계획.
김종석기자 kjs0123@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