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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환수기자의 장외홈런]‘지도자’ 장호연의 겹경사

입력 | 2002-11-22 18:02:00


“내가 죽거든 딴 거 필요없어. 관 속에 화투랑 카드 한 모씩만 넣어주면 돼.”

‘빨간 장갑의 마술사’로 불렸던 김동엽 전 MBC감독은 생전에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했다. 이 말은 결국 5년전 독신자 아파트에서 홀로 죽음을 맞은 그의 유언이 됐다.

그에 못지않는 프로야구의 대표적 기인이 ‘짱꼴라’ 장호연씨다. 지난해 여름부터 신일고 감독을 맡고 있는 그는 선수 시절부터 특이했다.

언젠가 구단과의 연봉협상이 지루한 줄다리기를 계속하자 그는 스키만 달랑 들고 오스트리아로 날아가버렸다. 소속팀 OB는 에이스가 없어졌다고 난리가 났지만 스키광인 그는 한달 동안이나 알프스의 설원을 질주하며 여유를 즐겼다. 결국 그는 그해 시즌 개막일까지 계약을 하지 않는 사고를 쳤다.

이런 일도 있었다. 개막전 노히트노런의 대기록을 세우는 등 통산 109승을 기록했지만 그는 강속구와는 거리가 먼 투수. 그런데도 볼 스피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그는 “140㎞짜리를 못 던지는 것이 아니라 던질 필요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어느날 기자가 믿을 수 없다며 약을 올렸다. 그랬더니 바로 그날 경기에서 여태껏 보여주지 않았던 강속구를 줄기차게 던져대는 것이 아닌가.

장호연씨는 누구보다 주관이 뚜렷했고 생각하는 야구를 했다. 한 번 옳다고 믿으면 누가 뭐래도 굽히지 않았고 공 하나를 던질 때도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운동에 방해가 되는 술과 담배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이 때문에 그는 구단에서 문제아로 낙인찍혔고 동료들로부터도 그리 환영받지 못했다. 하지만 김동엽씨와 마찬가지로 야구를 향한 그의 열정과 재기발랄함 만큼은 그때부터 이미 입소문이 났다.

그래서였을까. 장호연씨는 올겨울 자신이 순천효천고 창단감독 시절 키워낸 현대 조용준이 신인왕을 수상하고 삼성 코치 시절 지도했던 임창용이 메이저리그 입성을 앞두고 신일고에 캠프를 차리는 겹경사를 누리고 있다.

삼성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었던 ‘거물’ 훌리오 프랑코로부터 조만간 자신이 마이너리그 감독이 되면 코치로 모시겠다는 약속을 들었다는 장호연씨. 일상적인 모범생 스타보다는 그와 같은 기인들이 있기에 한국 야구의 맛이 한결 더 우러나는 게 아닐까.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