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동당 권영길(權永吉) 후보와의 인터뷰는 21일 오전 8시반부터 10시까지 여의도 민노당사 후보실에서 진행됐다.
8시15분경 당사에 도착한 권 후보는 후보실 바로 옆방에서 여직원으로부터 얼굴 분장을 받았다. 기자가 한 당직자에게 "방송 인터뷰가 아니라서 분장까지 할 필요는 없는데요"라고 말하자, 그는 "요즘은 언제 카메라가 들이닥칠지 몰라 매일 아침 출근하자마자 화장을 한다"고 말했다.
후보실은 세 평 남짓 됐다. 동아일보 정치·경제·사회·문화부장과 동아닷컴 팀장 등 5명이 어깨를 맞대고 앉으니 방이 가득 찬 느낌이었다. 인터뷰 내내 출입문을 활짝 열어놓은 것은 방이 비좁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당사 사무실 전체가 확 트여있고, 몇 안되는 방도 유리 창문을 통해 내부가 다 들여다보였다.
8시반 정각이 되자 권 후보가 후보실에 들어섰다. 민노당측 배석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쟁쟁한 분들이 이런 누옥(陋屋)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때 여직원이 와서 "차를 드릴까요, 커피를 드릴까요"하고 물었다. 권 후보는 "날씨도 추운데, 다 가져오지 뭐"라며 '두 배'로 일을 시켰다.
-서로 아는 처지에 이렇게 인터뷰를 하게 돼 참 쑥스럽습니다.(※ 권 후보는 이날 인터뷰를 진행한 부장들의 언론계 선배다) 그래도 바쁘시니까 한담은 뒤로 미루고 본론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군복무 기간을 18개월로 줄이고, 20만명 감군과 주한미군 철수 주장을 하는 등 명확한 국방공약을 내놓았지만, 현재 남북대치 상황에서 전투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전력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한 군 감축입니다. 70만 군인 중에서 20만명을 감축할 경우 공급과 수급의 균형을 위해 복무기간은 18개월로 단축해야 합니다. 왜 전력 효율성이 높아지느냐 하면, 우리 군은 현재 전방에 40%, 후방에 60%의 병력이 배치돼있는데, 후방에는 전력의 중첩이 많습니다. 육해공군이 각각 병참부대 등을 갖고 있는 게 한 예입니다. 이를 일관성있게 체계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도 병력감축을 해야 합니다. 이는 군사전문가들이 오래 전부터 해온 주장이며, 전력 손실이 아닙니다. 20만명을 감축할 때 2조8000억원의 국방비가 절약됩니다. 우리 국방비 중 인건비가 절대다수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불필요한 전력증강사업 폐지 등 부가가치까지 합하면, 전문가 추산에 의하면 6조원이 창출됩니다. 실제로 8조8000억원의 국방예산을 감축할 수 있는겁니다. 또 북한의 군축을 이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군축을 한다고 해서 상대방(북한)이 응한다는 논리적 근거가 뭡니까.
"91년에 남북이 군축협상을 진행했는데, 합의점까지 거의 갔다가 핵문제를 둘러싸고 무산된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군축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전제조건도 될 수 있습니다. 최근 북측은 국제회의에 나가서 50만명을 감축할 용의가 있음을 피력했습니다. 이런 것을 종합해볼 때 (저의 군축 주장은) 북의 군축을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소재라는 것입니다.
-군 문제에 대해 의견들이 엇갈리는데, 후보가 정책을 시행해나가는데 있어서 군 내부를 설득할 자신이 있습니까.
"군의 고급장교, 장성을 포함한 영관급들의 반발은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군은 원래 간부 위주 체제가 아닌데, 지금은 간부 위주로 돼가고 있습니다. 부사단장이 영급이었는데 지금은 별이고, 대부분의 부사단장이 2명으로 중복돼있습니다. 간부 비율이 일본 자위대보다 높아요. 그래서 그들의 반발은 우려되지만 절대 다수 군인과 국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설득할 자신이 있습니다.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민노당이 8.1%라는 경이적 득표율을 올렸습니다. 이에 반해 현재의 여론조사에서 권 후보의 개인 지지율은 매우 낮습니다.
"지방선거에서의 표심은 지역주의 청산에 대한 새로운 성향의 유권자들로부터 득표한 것으로 봅니다. 지역주의 청산이 제1의 과제인데, 그러려면 정책정당을 표방하는 민노당을 찍는게 좋은 길이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이번 대선에서도 지역감정에 좌우되는 표가 많을 겁니다. 어쩌면 지역감정에 기반을 둔 투표행태가 극에 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행태가 이제 하향곡선에 들어서는 극점에 달할 수 있습니다. 정당 이름을 말하기는 그렇지만, 한나라당의 경우 영남표를 집중적으로 끌어올 수밖에 없고, 막판에 노무현-정몽준 단일화가 된다고 하면 지난번보다 더 첨예한 선거전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기댈 수 있는 건 지역주의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가. 박빙의 선거전이 되면 한나라당의 경우 영남정서에 집중 호소하고, 상대방도 기술적인 지역주의에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권영길의 경우 현재의 여론조사에서 낮게 나타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표(死票) 심리 때문입니다. 특히 대선에서는 사표 심리가 강하게 작용합니다. 97년의 경우 사표 심리가 굉장히 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투표 때의 사표 심리에 관한 한 민노당 후보에게는 상당히 완화될 것입니다. 민노당 후보에게 찍는 표는 사표가 아니라 의미있는 표다는 것을 인식해가고 있다는 겁니다. 밑바닥에서 사람들을 만나면 그런 얘기 하는 분이 97년과 비교 안되게 많습니다. 권영길에게 찍는 표는 의미없는 표가 아니다 하는….
-권 후보가 선전하면, 상대적으로 진보적인 후보의 표를 갉아먹는 것 아닌가요.
"상대적으로 진보적 후보라고 했는데, 노무현 후보를 일컫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진보진영은 노무현 후보를 진보 후보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당을 제외한 범진보진영은 민노당 후보를 위한 공동선거대책본부를 구성 중입니다. 곧 발족할 것입니다. 노 후보는 진보 후보가 아니기 때문에 권영길을 정점으로 해서 모여야 한다고 하는 겁니다. 나아가 민주당 후보는 노동자 농민 빈민 입장에서 볼 때는 개혁적 후보도 아닙니다. 이들의 실제적 생활 기반을 붕괴시킨 게 민주당 정권 아닙니까. 민주당의 개혁정책은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는 오히려 빈부격차를 더 심화시키는 정책이었기 때문에 반개혁으로 받아들입니다. 개혁적이라고 일컬어지는 후보의 표를 갉아먹지 않겠다는 이유로 사퇴하는 것은 물론 (그와의) 연대도 있을 수 없습니다.
-투표 후 뚜껑을 열었을 때 어느 정도 목표치를 상정하고 있습니까.
"구체적인 상정선을 두고 있지는 않습니다. 우리 목표는 선거에 참여해 진보 대 보수 구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방금 개혁적 후보를 위해 정책적 연합을 할 생각이 없다고 한 것은, 앞으로 한국정치의 중심점은 진보 대 보수 구도를 구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게 구축되면 앞으로 한국정치 발전에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목표는 2004년 총선에서 진보진영의 중심부대를 형성하는 것입니다. 각 지역별로 활동가들이 형성돼야 합니다. 특히 농촌에서 그렇습니다. 지금 민노당 지구당이 100개인데, 농촌 지역에서는 전혀 기반을 구축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끝까지 완주할겁니까.
"진보 대 보수 구도를 구축하는 데에 진보진영의 운명이 걸렸는데, 사퇴하면 진보 씨앗이 죽어버립니다. 어떻게 사퇴할 수 있겠습니까."
-도와주는 진보진영은 어디어디입니까.
"민족민주운동을 한 단체들, 즉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과 그 외 통일운동단체들, 사회당을 제외한 민주운동 단체들, 통일운동 및 인권운동 단체들, 조직된 노동조직 즉 민주노총 등입니다. 사회당을 제외한 공동선거대책본부가 구성되면 그 공동선거대책본부가 사회당과 연대를 논의하는게 맞다고 봅니다. 한국노총은 외형적으로 민주사회당을 창당시켰습니다. 창당 목적은 '이제까지 보수정당과 해온 정책연합이 잘못됐다고 판단, 앞으로 연합하지 않겠다. 노동자의 정치세력화 길로 나아가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정당은 이미 있습니다. 민노당입니다. 정말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로 나아간다면 외형적으로 우리와 다를 바없습니다. 자연적으로 하나가 될 것입니다. 민노당은 한국노총을 제1의 연대 대상으로 상정하고, 지금 당대당 접촉 중입니다. 연대 문제에 대해 한마디 하겠습니다. 서로 성격을 달리하는 정당끼리 투표 전에 연대해서 (한쪽이) 사퇴하는 것은 세계정치사에 없습니다. 내각제는 투표를 한 후 득표와 의석수로 연합합니다. 대통령제 선거에서는 일차투표를 하고 나서 결선투표가 있으므로 결선투표 앞두고 연합하는 것입니다. 브라질의 룰라,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도 그랬습니다."
-양당체제가 오래 확립된 유럽 등을 보면 진보당과 보수당이 점점 수렴하면서 정강정책의 차이가 없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당과 공화당도 정강정책이 비슷해지고 있습니다. 민노당은 진보색채가 강하게 나타나는 게 장점이면서도 한편으로는 이게 집권을 목적으로 한 것이냐, 아니면 운동 차원이냐 하는 의문점이 남습니다. 향후 노선을 다소 오른쪽으로 옮길 타협 가능성은 없습니까.
"유럽에서 선거가 끝나고 난 후 공동정부를 결성하면서 정책점 차이에 대한 완충 지점이 자연스럽게 나왔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진보정치가 확립도 돼있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우편향이냐 좌편향이냐 하는 것은, 애도 나오지 않았는데 미리 여자로 생각하고 다른 집 아들과 결혼시킬 생각부터 하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제일 중요한 것은 진보역량을 강화하는 것입니다. 독일 사민당은 우파 정당을 근대화시키고 민주적 정당으로 탈바꿈하는 역할을 해냈습니다. 우리 민노당은 정책에 변화가 없습니다. 이 정책은 고전적 이념적 정책이 아닙니다. 우린 분명 집권을 위한 것입니다. 진보진영은 어느 나라든 집권을 목표로 하는 것입니다. 보수정당은 평상적으로 누릴 수 있는 게 있지만 진보정당은 권력을 장악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습니다. 우리 정책은 250여명의 교수들이 1년여 노력해서 얻은 것입니다."
-우리도 환경문제에 대해서는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고, 보수층도 환경문제에는 관심을 많이 갖고 있는데, 민노당의 정강이나 공약에는 환경문제가 그렇게 강조돼있지 않습니다. 녹색당과 연계할 방안은 없습니까.
"환경문제에 관한 한 녹색당의 정책이 민노당보다는 강할 것입니다. 녹색당 환경정책의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문제가 자본주의 체제의 양산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자본주의와 싸우지 않으면 환경문제는 개선될 수 없다는 건데, 민주노동당은 그렇게까지는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체적인 환경정책에 있어서 다른 정당보다는 앞서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를 가를 때, 크게는 성장이냐 분배냐로 양분할 수있는데, 한국의 현실로는 성장없는 분배는 곤란한 것 아닙니까. 기존 기업이나 근로자들조차 민노당이 집권할 경우 분배에 너무 초점을 두면 성장이 둔화돼 나중에는 분배마저 악화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습니다. 두가지를 함께 아우르는 경제관을 설명해 주시지요.
"성장없는 분배란 분명히 없습니다. 분배없는 성장도 불가능합니다. 민노당은 분배를 통한 성장을 이루겠습니다. 60년대부터 우린 성장제일주의 정책을 펴왔습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후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성장정책을 폈습니다. 30년 동안의 성장은 어디로 갔습니까. 왜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국가 중 빈부격차가 가장 심합니까. 그래서 분배 통한 성장을 이룩해야 한다는 겁니다. 파이를 만드는 사람들이 파이를 열심히 만들겠다는 생각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손을 가진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 분배입니다. (노동자들에게 동기부여가 전혀 안돼) 굴뚝산업이 완전히 붕괴하면 역설적으로 민노당의 집권을 당겨주는 계기가 될 수도 있지만, 그건 비극입니다. 브라질은 굴뚝산업이 붕괴돼 기업가들마저 진보 후보를 지지했습니다. 우린 노동자의 경영참여로 이런 상황을 막아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 일자리가 없어서가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없다는 것이 현실적인 문제입니다. 3D업종은 구인난입니다. 일각에서는 우리 노동자의 배가 불러서 그렇다는 말도 나오고 있는 현실입니다.
"영세 중소기업, 3D업종의 경우 인력난이 있다는 데에 동의합니다. 민노당 정책은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것입니다. 그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다른 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외국인산업연수생을 활용해 이 문제를 풀려는 것은 비정상적인 방법입니다. 청년실업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느냐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자칭 보수주의자들도 이제는 민노당 같은 당이 일정한 포션의 득표율을 올리고 정식으로 국회에 진출해 활동할 필요가 있다고들 많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진보가 왜 보수보다 더 우위에 있다고 생각합니까. 보수는 개혁적이 아니라고 봅니까.
"진보에게는 개혁이란 말이 맞지 않고 보수에게는 개혁이란 말이 맞습니다. 한국 절대다수가 부정부패와 정경유착의 척결을 바라고, 빈부격차 철폐를 얘기합니다. 진보에게 영원한 것은 평등과 정의입니다. 그런 점에서 진보가 우위에 있습니다. 부정부패는 집권 보수층이 해놓은 것입니다. 그것을 혁파하는 것은 진보정당밖에 없습니다. 누가 부패구조를 만들어왔느냐, 우리의 보수 구조를 볼 때 한나라와 민주당이 저질러온 것은 정경유착과 황제식 재벌구조 강화입니다."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민노당의 분배정책에 대해 단순하면서 순진하다고 보는 시각을 갖고 있습니다. 분배 주장이 역으로 많은 불평과 불공정을 낳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기업 노동자들이 더 많은 분배를 요구하면 더 많은 하청업체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분배를 받게 됩니다.
"국가의 분배와 기업간 분배를 달리 봐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청업체 중심의 절대다수 노동자들의 생활기반 구축과 삶의질 향상을 위한 분배입니다. 이게 잘 돼야 분배를 통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국가적인 사회보장제도 확립은 거의 전무합니다. 그것은 조세를 통해 이뤄져야 합니다. 선진국의 조세부담율은 GDP의 30∼53%인데 반해 우린 20%에 불과합니다. 고소득자들이 세금을 거의 안낸다는 것이죠. 고소득자로부터 세금을 거둬 사회적 임금으로 사회보장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1300만 노동자 중에서 실제로 500인 이상 사업체를 제외하면 98% 정도의 기업의 노동자들이 불공정한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대기업 임금조차 선진국에 비해 실질적 임금이 같은 것은 아닙니다. 현재의 대기업 수준에서도, 거둬지지 않는 세금이 많은 불완전한 세금구조로 인해 사회적 임금이 창출되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적 임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재벌에 대해 상속세와 증여세를 제대로 매기고, 고소득자에 세금을 더 부과하고, 간접세 중심에서 직접세 중심 세제로 바꾸는 가운데 새로운 세원을 창출해야 합니다."
-세원을 발굴하고 많은 상속세를 올리고 부유세를 매기는 데에 찬성한다 하더라도, 현재의 임금구조에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 요구는 하청기업에게는 불공정성으로 귀결됩니다. 하청기업 노동자를 생각한다면 대기업 노동자들의 요구가 자제돼야 한다는 측면이 있지 않습니까.
"잘못된 생각입니다. 대기업 노동자들의 임금이 월등하게 높은 게 아닙니다. 하향평준화돼선 안되고 밑의 것을 끌어올려야 합니다."
-진보에도 '먹물진보'와 '민중진보'가 있는데, 권 후보는 먹물진보에 해당하는 것 아닙니까. 진보 진영 가운데서도 교수 변호사 출신과 노동자 출신들은 서로 밥도 따로 먹고 잘 어울리지도 않는 게 현실 아닙니까. 실제로 권 후보의 생활이나 환경, 자녀들의 유학 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먹물진보란 말이 있습니까. 먹물진보가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먹물진보라고 일컬어지는 사람들이 있었다면 그들은 이미 다 보수 진영으로 갔습니다. 남아있는 사람은 먹물진보가 아닙니다."
-자녀 유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리 사회에 반미를 외치는 사람들 중 적지않은 사람들이 자녀를 미국 유학 보내고 싶어하는 아이러니가 있는데요.
"딸(34세)은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이론적인 것을 확립할 필요를 느껴 미국으로 유학간 것입니다. 노사문제에 대한 반대적 논리가 나오는 미국에 가자 해서 간 것입니다. 등록금 면제받고 장학금 다 받으면서 공부하고, 돌아와서 노동운동 하겠다는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아들은 프랑스에 갔습니다. 아들(33세)은 무역회사 다니다 적성을 살려 일하겠다 해서 퇴직금과 며느리 아르바이트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옛날에는 가난한 집 사람들이 유학가서 돌아와 사회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곤 했는데, 어느 때부터 부유한 사람들 자제들만이 유학가는 것으로 된 사회적 인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빨간띠나 구호, 만장 등 때문에 민노당에 대해 생래적인 거부감을 갖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민노당의 문화적 행태를 바꿀 생각은 없나요.
"작년 의약분업 파동 때 보니까 가장 고소득자로 평가받는 의사들도 붉은 머리띠를 매고 있더군요. 가장 보수적인 정당의 사무처 직원들도 급하면 다 머리띠 매고 뭘 외치고 합디다. 누구나 다 절박한 상황에 처하면 그렇게 합니다."
-민노당이 이번 대선에 후보를 냈고, 다음 총선에서도 약진이 기대되는데, 만약 선거에서 잘 안되면 다시 거리로 나설 생각입니까.
"민노당이 2004년 총선에서 국회에 진입하지 못하는 상황은 상상할 수 없습니다. 민노당은 분명히 2004년 국회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지지율로도 5∼10명의 의원을 배출할 수 있습니다. 단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실시돼야 합니다. 지역주의 극복이 국민의 여망이라면 정당명부제는 반드시 실시돼야 합니다."
-네티즌이 궁금해하는 것을 묻겠습니다. 네티즌들은 군 문제에 관심이 많습니다. 현대 전쟁은 군인의 머릿수가 아니라 첨단무기로 치러집니다. 숙련된 사람이 필요하다는 얘기지요. 그런데 군 복무기간을 단축하면 어떻게 숙련된 군인을 배출하고 전쟁을 수행할 수 있겠습니까. 양심적 병역기피 움직임이나 징병제 폐지 의견도 있습니다.
"군복무기간 단축이 전력손실을 가져오진 않습니다. 나토는 복무기간이 14개월이고, 독일 병력은 13만이니만, 이들의 전력이 그 때문에 한국보다 약하다고 얘기할 수는 없습니다. 현대의 전력은 병력 수나 복무기간으로 말하는게 아닙니다.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는 존중되고, 대체복무로 해결돼야 합니다. 대체복무의 영역과 기간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농업무분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붕괴된 농업을 살려내는 한 방안으로 대체복무 인력을 활용하자는 것이죠. 대체복무 기간은 현역복무보다는 길어야 형평성에 맞을 겁니다. 그러면 양심적 병역거부자가 너무 많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있는데요, 독일의 경우 전문가들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해 5차례 정도 개별면담 하면, (진짜 양심적 병역거부자인지 여부가) 정확히 판명난다고 합니다. 평화적 신념으로 병역을 거부하는 것도 존중돼야 합니다. 또 남·북·미 간에 포괄적 평화협정이 맺어지고 단계적 군축이 이뤄지면, 징병제를 모병제로 바꿔나가야 합니다."
-네티즌들의 두 번째 질문입니다. 정권이 바뀌고 장관이 바뀔 때마다 교육정책이 바뀌는 바람에 교사와 학생, 학부모의 혼란이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획기적 대책이 있습니까.
"입시위주의 교육을 철폐하고 바꿔야 합니다. 대학에 들어가기는 쉽고 나가기는 어렵게 만들어야 합니다. 상대평가제인 현재의 수학능력시험은 폐지하고 절대평가를 하는 대학자격시험을 정착시켜야 합니다. 대학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대학의 문제는 근본적으로 대학에 있는데, 고교에서 찾으려 하니 안됐습니다. 국공립대학을 통폐합해 파리 1∼13대학처럼 전 국공립대학의 서울대화를 이루자는 겁니다. 그러려면 무상교육이 실시돼야 합니다. 집권 첫 해에는 고교까지, 집권 5년 동안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구축하겠습니다."
-부유세에 대해 조세저항이 우려되는데, 가능하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세금정책이라도 세원이 발굴돼야 합니다. 부유세도 보유세입니다. 토지와 건물, 주식, 예금, 골프회원권처럼 드러나있는 모든 종합자산이 과세표준 10억원 이상, 시가로는 30억원 이상인 사람에 대해 누진율을 적용해 세금을 부과하자는 것입니다. 과세 대상자는 전체 인구의 1% 미만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면 한 해에 11조원을 거둘 수 있습니다. 종합토지세와 중복되지 않느냐는 말도 있지만, 부유세 부과대상자에 대해서는 현재의 종합토지세를 면제하면 됩니다. 소득자의 세원 발굴도 됩니다."
-부유세를 거둬 교육 의료 등에 쓰겠다고 했는데, 그러면 부유세가 한시적 목적세입니까.
"부유세로 교육문제 하나만 해결하자고 하면, 거의 완벽한 무상교육을 실시할 수 있습니다. 고교까지는 1조5000억원이 있으면 무상교육이 가능합니다. 사립학교의 경우 국민들은 재단이 상당 부분의 재원을 부담하는 걸로 알지만 실제로는 97%가 국가 부담입니다. 나머지 3%를 학부모가 부담하고 있습니다. 현재 예산으로도 그건 가능합니다. 여기에 대학 등록금을 면제시켜주면 무상교육이 거의 정착됩니다. 이렇게 하는 데 10조2000억원 정도 듭니다. 따라서 부유세 11조원을 교육에만 투자하면 무상교육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부유세를 신설해 11조원, 종합소득세 탈루액 6조8000억원 추가 징수, 부가가치세 탈루액 1조7000억원 추가 징수, 국방비 절감액 8조8천억원, 종토세 및 재산세 과세표준 현실화로 4조3000억원 추가 징수, 주식양도소득세 신설로 1조7000억원 등 예산절약과 세원발굴로 34조여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무상교육 무상의료 공약은 결코 허구적 구호가 아닙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주장을 하다가 이젠 안하는데, 철회한 것입니까.
"같은 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모두 동일한 임금을 받는 연대임금제도를 한때 검토했으나, 산업별 교섭체제가 확립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민노당은 현재 국민 개개인의 돈으로 해결하고 있는 기초생활 부문을 국가가 책임지도록 하는 국가공공성의 강화 쪽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이것을 사회임금이라고 하는데, 사회임금 비중이 높아지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에 근접해갈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사회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화하고 차별을 철폐하겠습니다. 이런 것들이 실현되면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가 어느 정도 줄어들 것입니다. 보수와 진보의 가장 명확한 구분은 이러한 국가공공성의 강화 여부에 있습니다."
-공무원노조의 노동3권을 완전 보장하자고 하는데, 상당수 국민들은 공무원들이 철밥통처럼 누릴 것은 다 누리면서 거기다 3권보장까지 해주란 말이냐는 부정적 인식을 갖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건 한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 공직사회의 부패구조 청산과 직접적으로 관계됩니다. 고위공직자들의 부패구조를 감시하는 내부적 장치가 공무원노조입니다. 그게 주목적이라고 합니다. 공무원노조가 그런 활동을 한다면 환영할 일입니다. 노동조합의 일반적 역할도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공무원사회가 민원의 대상이자 부패집단으로 돼있어 문제이지만, 대국민 봉사기관으로 된다면 숫자가 더 늘어나야 합니다."
-현재 공무원 수가 적다고 하는데,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세계적 추세와 모순되지 않습니까.
"우린 작은 정부에 반대합니다. 작은 정부는 대처리즘과 레이거니즘, 즉 신보수의 상징물입니다. 이들은 작은 정부를 이루기 위해 모든 것을 시장에 맡겼는데, 민노당은 반대합니다. 오히려 공공성을 강화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정부가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보장제도를 확립하려면, 사회복지사를 늘려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야 합니다. 이것은 큰 정부와 맥이 닿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 공무원은 과거 팩스나 컴퓨터가 없을 때보다 늘어났습니다. 이젠 업무를 단추하나로 해결하는 시대입니다. 많은 조직관리 연구자들은 조직진단을 통해 현 공무원 수를 절반 내지 3분의1로 줄이고 임금을 올려야 한다고 하는데요.
"사무실에 앉아 글을 쓰는 행정업무 위주의 공무원 상을 바꾸어야 합니다. 국민이 찾아오는 행정에서, 공무원이 국민을 찾아가는 행정으로 변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회보장제도가 거의 전무한 상태이므로, 그와 관련한 새로운 개념의 기구가 생겨야 하고, 현재의 인력을 그런 곳에 배치해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는 공무원이라면 더 늘어나도 좋다는 인식이 정착되도록 해야 합니다. 공무원사회가 철저히 정화돼야 합니다."
-중국이 오늘날 개혁개방 정책으로 연간 10% 이상의 고성장을 이룬 모티브는 과거 중국의 큰 국영기업들을 대폭 정리하고 효율적으로 인력을 배치한 것입니다. 권 후보의 말은 옛날 저효율시대로 다시 돌아가자는 것입니까.
"우리나라는 OECD 국가 중 국민 1인당 공무원 수가 가장 적습니다. 중국은 관료사회의 숫자가 아니라 부패가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부패구조 청산은 중국이나 우리나 똑같은 과제입니다."
-홍콩과 대만, 싱가폴은 공무원 숫자를 3분의1로 줄이고 월급을 대폭 늘려 엄청난 부패를 없앴습니다.
"공무원 수를 확 줄이면 국가유지가 되겠습니까. 미국이 최근 국가안보국을 신설한 것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권 후보는 자녀유학 문제 외에 개인적으로 이렇다 할 검증을 받은 게 없습니다. 만약 다른 후보들처럼 20%대의 지지를 받아 본격적인 검증대에 선다면, 뭐 꺼림칙한 거 없습니까.
"윤동주 시인의 서시 한구절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없는…."
-권 후보는 신문사 입사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어떤 목적의식을 갖고 해온 게 아니라 역사의 선택 등에 떠밀려온 것 아닙니까. 기자 시절 특종은 뭐가 있습니까.
"어떤 목적을 갖고 뭘 했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닌가요. 시대적 부름이 있다면 응하는게 맞는 것 아닙니까. 떠밀렸다고 표현해도 좋습니다. 개인적 희생이 분명한데도 이에 응했다면 오히려 칭찬해야 하겠지요. 기자 시절 개인적 특종이 없는 것을 저는 오히려 자랑으로 여깁니다. 유신에서 5공화국 등을 거치면서 거기서 특종을 한 게 무슨 보람이 있느냐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보다는 제대로 된 기사를 쓰기 위해, 그리고 어떻게 기사를 쓰야 하는지를 고민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러면 군사정부에 저항한 특종은 있었나요.
"언론계에 그런 특종이 있었나요. 유신부터 80년대를 거치면서 (동아일보의) '박종철군 물고문 사망' 특종밖에 더 있습니까.
-신문사 입사 동기들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아시나요.
"신문사에 남아있는 사람이 거의 없습니다. 후배들이 이미 국장을 지냈으니."
-기자시절 관심은 무엇이었습니까.
"대한일보에 들어갈 때 67년이었는데, 당시 외신부를 지망했습니다. 주위에서 외신부를 지망하는 기자는 처음봤다고 하더군요. 수습 끝나면서 그만 뒀다가, 71년에 다시 들어갔는데 그때도 외신부를 지망했어요. 결국 외신부엔 못갔지만요."
-왜 외신부를 지망했습니까.
"당시의 한국적 언론풍토에서는 언론 생활을 하면서 생활인도 되고 국제적 흐름도 읽고 공부도 할 수 있는 데가 외신부다 싶었거든요."
-권 후보가 비아그라를 사용한 적은 없지만 본 적은 있다고 말한 것을 어떤 책에서 읽었는데….
"노동자들이 비아그라를 안먹어도 되는 사회를 만들겠습니다."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는 모습을 언론을 통해 봤는데, 요리를 좋아하는 것이 개인적 취미입니까, 여성에 대한 배려 차원입니까.
"어려서부터 자취를 하다보니 요리를 잘 하게 됐고 맛도 잘 냅니다. 앞치마는 당시 사진촬영을 위해 두른 것이고요. 가사노동을 부담해야 한다는 생각 이전에, 자연스럽게 내가 먹는 것은 내가 한다는 차원입니다."
-무슨 음식을 잘 하죠.
"생선찌개, 된장찌개입니다."
-파리특파원도 했는데, 좋아하는 포도주는 뭡니까.
"생테밀리옹이라고…. 거기서는 대중적인데, 여기서는 고급이라 할지도 모르죠. 많이는 아니지만…."
-다시 딱딱한 질문 하나 드리겠습니다. 공무원노조에 대해 정부는 도저히 용납 안된다, 처벌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국민 여론도 곤란하다는 정서가 많은 것 같습니다. 집권하면 연가파업을 주도하다 징계를 받은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징계자는 원상회복 돼야 합니다. 판사노조와 경찰노조가 있는 나라도 많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군인노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