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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으로 본 세상]미숙아 키우며 일부일처제 진화

입력 | 2002-11-24 17:37:00


436년 전 아기를 낳다 죽은 양반집 산모 ‘윤씨’의 생생한 미라가 얼마 전 발굴됐다. 단층 촬영 결과 미라의 태아는 머리가 질 입구까지 내려와 있었고 산모의 자궁은 파열된 상태였다. 요즘은 목숨 걸고 출산하는 여성이 없다. 하지만 옛날에는 ‘윤씨’처럼 죽어간 산모와 태아가 부지기수다. 임신 9개월이 되면 태아는 골반의 산도를 통해 머리부터 나온다. 산도를 비집고 나오는 아기의 머리는 0.5∼1㎝ 찌그러질 만큼 압력을 받는다.

지난 300만년 동안 우리 뇌는 3배나 커져 고등한 존재가 됐다. 반면 골반은 오히려 좁아졌다. 네발 원숭이가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다리와 다리 사이가 좁혀졌고 골반도 따라서 좁아진 것이다. 이 때문에 겪은 출산의 부작용은 엄청났다.

‘커진 두뇌’ ‘좁아진 골반’이라는 딜레마를 우리 조상은 ‘미숙아 출산 전략’으로 풀었다. 보통 침팬지나 포유류는 뇌가 성체 뇌 용적의 45% 정도 됐을 때 세상에 나온다. 하지만 인간은 어른의 뇌 용적보다 불과 25%일 때 태어난다.

만일 다른 동물처럼 태아가 충분히 성숙한 상태에서 세상에 나온다면 사람의 임신기간은 21개월은 되어야 한다고 한다. 태어난 아기는 태아의 뇌와 같은 속도로 뇌가 급성장하다가 생후 1년 무렵부터 뇌의 성장이 둔화되며, 이 때 비로소 걷기 시작하게 된다.

원시시대에 인큐베이터 노릇을 한 것은 부모의 강한 결속과 보살핌이었다. 미숙아를 키우면서 자유분방한 난교가 일부일처제로 바뀌었다고 진화학자들은 본다. 가정을 이뤄 자녀를 잘 돌보는 유전자를 가진 종족만이 생존했고 이들만이 자손을 남긴 것이다.

포유류 가운데는 일부일처제가 3∼5%에 불과하다. 소나 말 같은 대부분의 포유류는 낳자마자 걸어 다녀 굳이 일부일처제가 필요 없다. 반면 지구상에서 자식에게 가장 공을 많이 들이는 동물인 새는 90%가 일부일처제다.

일부일처제 동물은 암컷의 ‘배란 은폐’가 특징이다. 암컷이 배란기가 언제인지 숨김으로써 발정기가 아닌 때도 섹스가 가능해졌다는 설명도 있다. 자주 섹스를 하는 게 공고한 일부일처제 가정을 이루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분명했던 것 같다.

최근 연구를 통해 새나 사람은 기본적으로 일부일처제 동물이지만 몰래 바람을 많이 피운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다. 하지만 바람피운 남편이나 아내라 하더라도 가정이 파괴되는 것을 원치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 몸에는 애지중지 미숙아를 키웠던 조상의 유전자가 대물림되고 있기 때문이다.

dong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