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방자치단체가 수십억원 예산을 들여서 농산물 가공설비를 만들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이 설비가 녹만 슬고 있다는 보도를 가끔 듣는다. 원인을 알고 보면 이 설비로 생산되는 제품이 시장에서 환영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가나 지방자치 단체가 국민을 위해 어떤 서비스를 개발할 것인가, 기업이 고객을 위해 어떤 제품을 생산할 것인가, 남편이 부인에게 생일 선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문제 모두가 고객의 필요(need)와 기호(like)를 감지해야 잘 풀린다는 의미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요약하면 고객을 대상으로 그와 ‘주고받음’의 관계형성에 성공하려면 그의 필요와 기호를 감지하는 정서적 능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이런 능력을 감수성(感受性)이라고 정의하면서 우리 삶의 현장에서 감수성의 실제 모습이 어떤 것인지 사례를 통하여 알아보자.
#국가의 정치차원
세종대왕은 백성을 나라의 고객으로 생각하고, 고객의 필요와 아픔이 무엇인지를 감지하는 위대한 감수성을 발휘했다. 세종은 글 없는 백성의 아픔을 감지하고 오늘날 기업이 신제품을 개발하는 방식으로 훈민정음 개발에 나섰다. 개발조직으로 ‘정음청’을 두었고 집현전 학자들로 ‘개발팀’을 구성했다. 당시 음운(音韻)분야 석학이던 중국의 황찬에게 성삼문을 보내어 첨단지식도 얻어 오게 했다. 이렇게 개발된 한글은 한문지식 독점혜택을 누리던 사대부들의 반대에 부닥쳤으나 세종은 이들의 저항을 누르고 다수 국민의 필요를 충족할 ‘신제품’을 발표했다. 세종의 감수성은 “내가 글 없는 백성의 아픔을 딱하게 여겨서(予爲此憫然)”라는 반포문(頒布文 )속에 잘 나타나 있다. 다음에는 기업경영자가 감수성을 발휘하여 소비자를 위해 성공적인 제품을 개발한 케이스를 살펴보자.
#기업의 경영차원
경기 안성시에서 시리얼(cerial)식품을 생산하는 다국적 기업 켈로그사는 켈로그(W. Kellogg)에 의해 1905년 미국에서 창업되었다. 초등교육밖에 받지 못한 켈로그은 소화기(消化器)전문 내과병원에서 25년간 잡역부로 일하면서 입원 환자들의 급식까지 도맡았다. 그러던 중 환자들로부터 ‘빵을 먹으면 속이 불편하다’는 푸념을 들었다. 이 푸념에 대한 켈로그의 감수성은 민연(憫然)의 정으로 나타났다. 환자들의 속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빵 속에 남아 있는 이스트 때문이라고 생각한 켈로그은 이스트를 사용하지 않고 대용식을 만들기 위한 실험에 들어갔다.
켈로그은 밀을 삶아서 얇게 눌러내는 방법으로 실험을 해보았으나 환자들이 환영하는 식품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켈로그은 밀을 삶는 시간, 눌러내는 롤러(roller)의 압력과 속도 등 데이터를 바꿔 가면서 꾸준히 실험을 계속했다. 무수한 실험 끝에 드디어 환자들이 좋아하는 시리얼 식품이 탄생했고, 환자들은 퇴원한 뒤에도 시리얼을 우편으로 주문하기에 이르렀다.
#가정의 사랑차원
1960년대 미국에 유학하여 세탁기도 없이 살아가는 가난한 학생 부부에게 첫 아기가 탄생했다. 하루에 20여 개 나오는 기저귀와 기타 옷들을 모두 손으로 빨아야 하는 일이 산후조리를 해야 하는 산모에게 아픔이 된다는 사실을 감지한 것은 남편의 감수성이었다. 남편은 모든 빨래를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고 매일 밤 10시 학교에서 돌아오면 2시간 동안 빨래를 해서 빨랫줄에 걸고 마른 빨래를 걷는 일을 도맡았다. 이런 일이 애 셋을 키우는 동안 계속되면서 남편은 3만여 개의 기저귀를 빨아 댔다. 산후조리를 잘한 부인은 남편에 대해 고마움을 느꼈고, 귀국하여 남편이 출근할 때마다 정성껏 도시락을 싸 준다. 이 일이 30년 넘도록 계속돼 (일년에 250개만 계산해도) 7000개가 넘는 도시락을 싸준 셈이다. 결국 이들 부부는 30여년 동안 무엇인가를 부지런히 ‘주고받은’ 것 같다. 개인의 사생활 차원에서도 감수성은 주고받음의 삶을 가능하게 하는 필요조건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이렇게 중요한 감수성은 선천적으로 주어지는 것인가, 아니면 후천적으로도 형성 가능한 것인가? 다음 글에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윤석철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yoonsc@plaza.snu.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