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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해 봅시다]윤병철금융그룹회장-김정태국민은행장

입력 | 2002-11-24 17:42:00

국내 금융산업의 산 증인인 윤병철 우리금융지주회사 회장(왼쪽)과 국민은행을 이끌고 있는 김정태 행장이 ‘한국 금융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주제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있다.권주훈기자


서울시청과 덕수궁이 내려다 보이는 서울 중구 소공동 조선호텔의 중식당.

한국 금융산업을 대표하는 우리금융그룹 윤병철(尹炳哲·65) 회장과 국민은행 김정태(金正泰·55) 행장이 마주 앉았다.

윤 회장은 농업은행 한국투자증권 하나은행 등 금융기관에만 42년 몸담은 한국 금융산업의 산증인이고, 김 행장은 자산규모 204조원인 국내 최대 금융기관의 수장이다.

두 사람은 은행의 대형화 추세로 말문을 열었다.

“국민은행과 우리은행에 이어 하나-서울은행 통합 작업이 진행 중이고 다른 은행들의 합병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앞으로 한국의 은행산업은 3, 4개의 선도은행이 이끌게 될 것입니다. 지금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는 중이지요.”(김 행장)

“은행 대형화는 거스를수 없는 국제적 추세입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지요. 하지만 합친다고 해서 생존이 보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규모에 맞게 부가가치를 내야 합니다.”(윤 회장)

3, 4개의 대형은행이 지배적 지위를 갖는다면 규모가 작은 은행들은 어떻게 될까. 이 부분에서 두 사람의 의견이 엇갈렸다.

“덩치를 키우지 못한 은행들은 갈 길을 분명히 정해야 할 것입니다. 작은 규모로 특화된 시장에 집중할지, 아니면 합병의 길을 선택할지 말입니다.” 윤 회장은 소규모 은행도 특화를 통해 살아남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김 행장의 생각은 달랐다. “니치 마켓(틈새시장)은 없다고 봅니다. 자산규모 100조원, 200조원의 은행들 사이에서 10조원, 20조원 규모의 작은 은행이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윤 회장이 반론을 제기했다. “금융시장이 커지면서 새로운 서비스도 많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지난 4년간 600여개 금융기관이 사라졌지만 선물회사 뮤츄얼펀드 자산운용사 리츠회사 등 신종 금융회사들도 생겨났습니다. 니치마켓은 언제나 있기 마련입니다.”

두 사람의 대화는 은행의 미래 모습으로 옮겨갔다.

김 행장은 은행 사업은 크게 영업, 상품개발, 유통 3개 분야로 나눌 수 있다며 국민은행은 상품개발에서는 손을 떼겠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3개 분야 모두에 매달리는 은행은 거의 없습니다. 국민은행은 국내 최대인 1300여개 지점망을 가진 은행입니다. 수익증권 보험상품 등 수익이 높은 다양한 금융상품을 판매하는데 중점을 둘 생각입니다.”

윤 회장은 “은행의 경쟁력은 얼마나 훌륭한 상품을 개발해 적절하게 판매하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라며 “우리은행은 유통 뿐만 아니라 상품개발에도 신경을 많이 쓸 것”이라고 말을 받았다.

한국의 은행들이 국제경쟁력을 갖출만한 준비는 된 것일까. 두 사람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윤 회장은 “국내은행들은 너무 예대마진에만 의존하고 있다”며 수익모델의 후진성을 아쉬워했다. 환위험관리 상품같은 고수익 상품이나 경영자문 등 다양한 수익원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

윤 회장은 말을 이었다. “경쟁력의 원천은 인력입니다. 우수한 인력을 많이 확보하기 위해서는 능력에 따라 보수를 차등 지급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모든 직원의 평등을 원하는 노조도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인력 문제가 거론되자 김 행장도 할 말이 많았다. “은행이 세계 일류가 되려면 직원의 경쟁력이 세계 일류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국민은행은 직원들에게 1년 동안 맘껏 외국에 나가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있습니다. 올해에 250명이 나갔지요. 돈이 많이 들지만 효과가 있으리라고 봅니다.”

“감독 환경도 국제수준이 돼야 합니다.” 윤 회장이 감독당국에 대한 바람으로 말을 돌렸다. “최근 가계대출이 늘자 금융감독원이 건전성 감독 차원에서 몇차례 규제조치를 내놓았습니다. 사전 예방조치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외부에는 감독당국이 은행 경영에 계속 개입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습니다.”

기자가 끼어들어 ‘은행들이 너무 소매금융에만 치중하고 기업금융을 등한시한다’는 지적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신용이 있는 대기업은 이제 직접금융시장으로 가야 합니다. 은행은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이용해야지요. 물론 한계상황에 몰린 기업에까지 자금을 줄 수는 없습니다. 신용이 낮은 기업은 신용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해야 합니다.”(윤 회장)

“옳은 말씀입니다. 다만 직접금융시장이 잘 되도록 은행도 지원을 해야겠지요. 채권형 수익증권같은 상품을 많이 판매해서 직접금융시장으로 자금이 돌도록 해야 합니다. 중소기업은 은행에 접근하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은행들이 서로 우량 중소기업을 찾아 대출을 해주려고 경쟁을 하고 있지요.”(김 행장)

은행들이 국내시장에만 안주하고 세계시장 진출에 대해 소홀한 것은 아닐까.

“해외에 나가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라고 봅니다. 내실을 키우고 선진 경영방식을 먼저 갖춰야겠지요.”(윤 회장)

“미국이나 유럽 진출은 현실성이 없지만 아시아는 해볼만 합니다. 중국 인도 동남아 등지에 나가 현지인을 대상으로 소매금융 사업을 해볼 생각입니다. 중국에는 대만 싱가포르 등 다른 아시아 은행과 손잡고 진출할 계획입니다. 시간은 조금 걸리겠지요.”(김 행장)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

신치영기자 higgledy@donga.com

▼윤병철 우리금융그룹 회장

△1937년 경남 거제 출생

△경남 하청고, 부산대 법대

△60년 농업은행 입행

△81년 한국장기신용은행 상무

△85년 한국투자증권 회장

△91년 하나은행장

△2001년 우리금융그룹 회장

▼김 정 태 국민은행장

△1947년 광주 출생

△광주제일고, 서울대 경영학과

△80년 대신증권 상무

△97년 동원증권 사장

△98년 주택은행장

△2001년 국민은행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