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반 세계무대를 휩쓸던 추소비티나(왼쪽).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지금도 여전히 군살없는 몸매와 앳된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아들에게 꼭 금메달을 선물하고 싶었는데….”
23일 헝가리 데브레첸에서 열린 제36회 세계체조선수권대회(20∼24일) 여자 뜀틀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우즈베키스탄의 옥사나 추소비티나는 시상대에서 끝내 눈물을 보였다. 여자체조 선수로서는 ‘환갑’인 27세의 나이에, 두 아들까지 둔 ‘아줌마 선수’로서 놀라운 기량을 보였다는 주변의 찬사도 아픈 마음을 달래지는 못했다. 얼마전 백혈병 진단을 받고 독일에서 치료 중인 3세 된 아들 알리셰르 생각뿐이었다.
추소비티나는 11년 전인 1991년 이 대회에서 2관왕에 올랐고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체조 여왕. 올 10월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서도 2개의 금메달을 땄다. 그렇다고는 해도 10대 선수들이 휩쓰는 세계무대에서는 이미 절정기를 지난 나이. 무리한 도전인줄 알면서도 이번 대회에 나온 것은 오직 아들의 치료비 때문이었다.
대회 전 그는 “완치가 가능하지만 치료비가 12만유로(약 1억3500만원)에 달한다”는 얘기를 병원측으로부터 듣고 절망했었다. 구 소련권 국가 중에서도 최빈국의 하나인 우즈베키스탄에선 상상할 수도 없는 거액이었기 때문이다.
부산 아시아경기대회에 함께 출전했던 레슬링 국가대표인 남편 바코디르 쿠르바노프(30)와 함께 백방으로 치료비를 구해 봤지만 뾰족한 방법이 없었다. 우즈베키스탄 정부가 스포츠를 통한 국위 선양의 대가로 추소비티나에게 지급하는 지원금은 매달 300달러(약 36만원). 한 달 생활비도 안 되는 이 돈을 아무리 열심히 모은다고 해도 치료비 마련은 불가능했다.
추소비티나는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결심했다. 금메달 상금이 3000유로(약 340만원)여서 큰 보탬이 될 수는 없었지만 우승하면 광고 모델로 스카우트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동메달에 그치고 말았다. 실낱같은 희망이 사라졌지만 그의 간절한 염원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 대회 출전을 계기로 딱한 사정이 알려지면서 국제체조연맹(FIG)은 전 회원국들을 상대로 ‘추소비티나 돕기 운동’에 들어갔다.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