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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TV드라마는 ‘정치 프리즘’?

입력 | 2002-11-25 18:14:00

SBS '대망' '영리한 토끼는 굴을 세 개 판다' 냉혈상인 박휘찬격동기 처세술 '훈수'


‘양금택목(良禽擇木)’.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튼다.

최근 방영된 SBS 특별기획 ‘대망(大望)’에서 금평대군(정성모)은 한성판윤 윤대감(김병기)에게 나무 위에 새가 그려진 그림 한 장을 선물한다. 세자와 치열한 권력다툼을 벌이고 있는 그가 “좋은 신하는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겨야 된다”는 고사가 담긴 그림을 통해 자기편으로 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장면.

이 그림을 본 상인 박휘찬(박상원)은 “교토삼굴(狡兎三窟)이라, 영리한 토끼는 살아남을 굴을 세 개 파놓는 법”이라며 정치적 격동기에 살아남는 처세술을 훈수한다.

‘대선(大選)의 계절’에 방송 드라마에서 권력 투쟁의 회오리가 일고 있다. SBS ‘대망’과 MBC ‘삼총사’, KBS1 ‘제국의 아침’ 등 드라마에서 권력 투쟁이 본격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

MBC '삼총사'
정치 경제 주먹판서 엇갈리는 세친구 운명 政財界실존인물 연상 인물설정 흥미진진
KBS '제국의 아침'
전제군주 꿈꾸는 광종 혹독한 왕권강화 정책 勢불리 호족들살아남기 전전긍긍

‘모래시계’를 연출했던 ‘대망’의 김종학 PD는 최근 인터뷰에서 “대망은 대선용”이라는 말을 했다. ‘경제사극’을 표방한 ‘대망’에서는 특히 정치 권력에 대한 상인들의 줄서기와 권모술수 묘사가 압권이다. ‘냉혈상인’ 박휘찬은 대표적 인물. 그는 “우리같은 자가 볼 때 ‘저 위에 있는 분들’은 다 도토리 키재기”라고 의미심장한 대사를 한다. 그는 금평대군에게 뇌물을 주면서 비호를 받는 동시에 라이벌인 세자 쪽에게도 아들 시영(한재석)을 보내 양다리를 걸친다. 일종의 ‘보험들기’인 셈이다.

아버지 휘찬은 정경유착의 힘을 빌어서라도 중국처럼 부강한 나라를 꿈꾸는 개발독재자형 스타일라면, 아들 재영(장혁)은 노동자(수공업자)와 소상인(보부상)이 우대받는 이상적 복지국가를 꿈꾸는 개혁정치가형으로 각자의 ‘대망’을 놓고 한판 대결을 벌인다.

MBC드라마 ‘삼총사’는 정치, 경제, 주먹 세계에 뛰어든 세 친구의 엇갈린 운명을 그린 드라마. 처음부터 ‘본격 정치드라마’라는 타이틀을 내건데다 현존 정재계의 인물을 배경으로 한 듯한 캐릭터가 많다.

첫회에 등장했던 미래그룹 이대영회장은 97년 여야 대선후보에게 막대한 정치자금을 제공했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해외에 체류중인 인물로 그려져 ‘실존 인물’을 연상시킨다. 또 주인공인 총학생회장 출신 정치인(손지창), 대학시절 발명한 프로그램 덕분에 성공한 벤처기업가(류진)등도 현실에서 모티브를 따온 캐릭터이다.

KBS사극 ‘제국의 아침’도 최근들어 광종(김상중)과 호족간의 피비린내나는 권력 투쟁을 부각시키면서 시청률이 빠르게 상승하고 있다. 광종은 냉혹한 군주상으로 호족들을 위압하려 하고 권력 투쟁에서 세가 불리한 호족들은 살아남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특히 24일 방영된 역모 세력에 대한 광종의 국문 장면은 유례없이 잔인하게 묘사됐다.

방송사측에서는 ‘대선을 겨냥한 권력투쟁 드라마’가 주목을 끌기는 쉽지만 그만큼 정치적 오해도 살 수 있어 부담스럽다는 분위기다.

MBC ‘삼총사’에서는 미래그룹 아들들의 분쟁 장면이 현대그룹의 ‘왕자의 난’을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에 제작진이 “절대 아니다”고 손사래를 치고 있고, SBS ‘야인시대’는 대선후보 인척에 대한 묘사가 그려질 것이라는 증권가 루머에 대해 “대본상 그런 내용은 없다”고 적극 해명하고 나서기도 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