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감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23일 보건복지부에서 인플루엔자(독감) 주의보를 발표했을 때 이미 독감에 걸려 고생하고 있는 사람들은 “왜 이제야…” 하면서 볼멘소리를 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는 독감이 발생과 함께 불길처럼 급격하게 퍼져나가는 특성 때문이지 행정부가 뒷북치는 것이라 보기는 어렵다. 얼마 전 ‘파나마 A형’ 독감 바이러스가 서울에서 처음 확인되었다는 보고가 있었을 때 유행주의보는 예견된 상황이었다.
아직도 독감을 ‘독한 감기’ 정도로 이해하는 사람이 있는데 독감과 감기는 다르다. 독감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에 의해 발생하며 38도가 넘는 고열과 전신 근육통을 동반한다. 이번 독감을 앓은 사람들은 ‘온몸을 두들겨 맞은 듯이 아프다’는 말을 생생하게 경험했을 것이다. 이어 목이 잠기고 아프며, 기침이 심해지고 콧물이 흐르는 감기 증상이 나타난다. 감기는 아무 때고 발생하지만 독감은 겨울에 유행한다. 독감이 퍼지면 인구의 약 10∼40%가 감염될 정도로 전염성이 무척 강하다. 무엇보다 독감이 무서운 이유는 폐렴 같은 합병증으로 사망에 이를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따라서 면역력이 약한 어린이와 노인, 호흡기나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환자들은 특히 주의가 필요하다.
흔히 감염성 질환은 한번 걸리면 면역이 생긴다고 하는데 왜 독감은 매년 기승을 부릴까? 이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때문이다. 이 바이러스는 수시로 형태를 바꾸기 때문에 예전에 독감을 앓았거나 예방주사를 맞았어도 소용이 없다. 독감 예방주사를 해마다 맞아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그해 겨울에 유행할 독감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형태를 예측하고 제약회사는 이를 근거로 새 예방주사를 만들어낸다. 다행히 이번에 유행하는 파나마 A형 독감은 WHO에서 예측한 것이므로 예방주사를 맞으면 그 효과를 볼 수 있다. 주사는 2∼4주 지나야 효력이 나타나므로 늦은 감은 있지만 독감의 본격 유행시기는 12월에서 3월이니까 지금이라도 맞아두는 편이 안전하다.
해마다 10월 중순에 독감 예방주사를 맞다가 올해 해외학회 참석으로 그 기회를 놓친 필자는 접종을 차일피일 미루다가 결국 독감에 걸리고 말았다. “건강한 사람은 굳이 예방접종할 필요가 없어요. 2∼3일 푹 쉴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예요”라며 평소 젊은 직장인들에게 얘기했던 필자는, 요즘 연방 코를 풀어대며 잠긴 목소리로 환자들을 보고 있다.
독감에 걸리면 빨리 병원을 찾아 독감치료제를 복용하는 것이 좋다. 감기치료제는 없지만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증식을 억제해 질병 경과를 약화시켜주는 약이 개발돼 있다. 하지만 ‘주사 한방’으로 독감을 떨쳐내는 비방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증상이 가라앉을 때까지 잘 먹고 푹 쉬며 기다리는 수밖에는….
요즘 같은 때에는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고 외출했다 돌아온 후에는 반드시 손을 씻는 등 개인 위생에 주의해야 하며, 과로나 과음으로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마지막 남은 달력 한 장에 빼곡히 적힌 스케줄을 무리없이 소화하기 위해서라도 한번쯤 건강을 돌이켜 볼 때다.
박용우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교수·가정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