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미녀를 사이에 둔 종교전쟁이다. 나이지리아에서 열릴 예정이었다가 유혈폭동 때문에 영국으로 옮겨 열리게 된 미스 월드 선발대회 얘기다. 거창하게 말하면 세계화와 이슬람 근본주의의 충돌이다. 테러의 대상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에서 미녀의 왕관으로 바뀌었을 뿐이지만. 여자는 뚱뚱해야 미인이고 날씬하면 에이즈환자 취급이나 받는 아프리카, 그것도 간음한 여자는 돌로 쳐죽이라는 이슬람 율법이 지배하는 나이지리아에서 서구식 미인대회를 유치할 때부터 이미 그런 충돌은 예고된 것이었다.
▷이 나라 미녀가 세계대회에만 나가면 번번이 떨어지는데 낙담한 미인대회 사무국이 2년 전 “세계적 기준에 맞는 미인을 뽑아달라”고 심사위원들에게 요구했던 것이 비극의 시작이라면 시작이었다. 지난해 미스 나이지리아가 아프리카 최초로 미스 월드의 왕관을 쓴 거다. 1999년 군사정권을 대체하고 들어선 나이지리아 민간 정부는 기쁜 나머지 2002년 대회를 유치했다. 각국 미인들이 “혼외정사로 출산한 이혼녀를 돌로 쳐죽이라고 판결한 나라에 가기 싫다”고 꺼리자 정부는 이슬람법원의 판결을 번복하겠다고 했다. “여자의 정숙성을 해치고 성적 문란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는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비판을 피하려고 대회 날짜도 라마단을 피했다.
▷그런데 한 일간지의 20대 초반 여기자가 광신도들의 가슴에 불을 질렀다. “솔직히 마호메트는 미인대회 참가자를 아내로 택했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쓴 거다. 감히 신성한 마호메트를 모욕하다니! 종교갈등이 뿌리깊은 이 나라의 이슬람교도들이 들고일어났고 이슬람계와 기독교계의 유혈 충돌사태로 번지고 말았다. 본의 아니게 폭동을 촉발한 여기자에게는 26일 이슬람교단의 살해 명령 ‘파트와’가 떨어졌다. 세계미인대회로 상징되는, 미국화나 다름없는 세계화에 대한 이슬람 문명권의 응징인 셈이다. 이를 눈치챈 여기자는 진작 미국으로 피신한 상태이고.
▷이 아수라장의 현장에 있었던 미스코리아 장유경양이 “수백명이 사망하는 장면을 목격했는데 ‘웃는 얼굴’로 대회에 나설 수는 없다”며 대회참가를 거부하고 귀국해 신선한 충격을 준다. 사상자와 가족들이 슬퍼하는 상황에서 개인적 명예를 위해 미를 뽐낼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연세대 생물학과 입학 예정인 그는 “가난과 질병 편견으로 고통받는 그들을 보면서 의료선교를 하겠다는 뜻을 더욱 굳히게 됐다”고도 했다. 미인대회에 대한 찬반론이 분분하고 나름대로 당위성도 만만찮지만, 이 경우엔 장양의 포기가 더 아름답다. 미스월드보다 더 예쁜 미스코리아 만세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