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단지형 아파트 효시인 서울 마포아파트 전경. 1962년~1964년까지 7개동 642가구 규모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 당시로서는 최첨단 주택으로 각광을 받았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달 말이면 전국의 주택보급률이 100%를 넘어선다. 산술평균적으로 보면 4인 가족 한 가구당 집 한 채씩이 돌아간다는 뜻이다.
1985년까지만 해도 70%에도 못 미쳤던 주택보급률이 17년 만에 100%를 넘어서게 한 ‘일등 공신’은 아파트다. 1962년 서울 마포에서 첫 단지형 아파트가 선보인 이래 현재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 양식으로 자리잡았다.
전체 주택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1970년 0.8%에서 30년 만인 2000년에는 전체의 절반에 가까운 47.7%에 달한다. 도시지역에서는 절반을 넘어선 55.2%에 이르렀다.
이런 이유로 아파트는 20세기 최대의 히트 상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앞으로도 상당 기간 아파트의 인기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아파트가 뭐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걸까?
한국의 대표적인 부촌 아파트단지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79년~82년에 82개동,6200여가구 규모로 지어지면서 한국 주택시장에 아파트의 본격적인 확산을 알리는 신호탄이 됐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아파트의 인기 비결은〓우선 핵가족화와 여성의 지위 향상을 꼽을 수 있다.
대가족에서는 가족간 위계나 성별(性別), 신분 차이 등에 따라 사랑채, 안채, 행랑채 등과 같이 주택 공간을 나누는 게 중요하다. 하지만 핵가족에서는 굳이 공간을 분리할 필요가 없다.
여성의 지위가 오르고 경제활동이 늘어나면 가사노동의 부담을 줄일 수 있는 주거형태를 찾는 수요가 커진다. 그런 점에서 편리한 가사노동이 가능한 주거형태이면서 공간의 성별 분리가 엄격하지 않아 여성적 주거형태로 불리는 아파트의 인기는 당연하다.
정부가 단기간에 주택을 대량 공급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아파트 중심의 주택정책을 펼친 것도 원인이다.
한국은 경제성장기에 농촌 인력을 도시로 끌어들이는 정책을 집중적으로 펼쳤다. 그 과정에서 도시 주택난은 심각해졌다. 또 1970년 50.1%였던 도시화율이 1995년 90.5%로 뛰어올랐을 정도로 도시화도 급진전되면서 땅값이 크게 올랐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토지이용도를 최대한 끌어올릴 수 있는 주택, 곧 아파트가 필요했다.
단독주택에 비해 아파트의 자산가치가 높다는 소비자 인식도 아파트 확산에 기여했다.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1986년 말 52.0에서 2000년 말 103.1로 거의 두 배로 증가했다. 반면 단독주택은 72.5에서 82.6으로 지수증가가 매우 미미하다.
아파트를 노동자용 ‘저급(低級)’ 주택으로 보는 서구와 달리 한국에서 아파트는 중산층용 ‘고급(高級)’ 주택이라는 이미지가 강하다. 여기에 고도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갈수록 프라이버시를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심리적인 요인도 아파트가 인기를 끈 한 원인이다.
여기에 아파트가 다양한 편의시설과 첨단 기능을 갖춘 주택설비, 편리한 주택관리와 주차여건 등을 앞세워 단독주택을 주택시장에서 밀어내고 왕좌 자리를 차지하게 한 동인(動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21세기 미래주택을 표방하고 있는 서울 강남구 도곡동의 타워팰리스. 1만평 대지에 최고 69층을 포함한 6개동, 2500여가구 규모로 건설되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아파트는 진화 중〓아파트는 한 때 ‘닭장’으로 불리며 대표적인 비인간적, 비개성적 주거양식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오명에서 벗어나고 있다.
우선 아파트 평면이 확 달라지고 있다. 20평형대 아파트에 방을 4개나 배치한 아파트가 선보일 정도다. 입주자가 자신의 취향에 따라 공간을 꾸밀 수 있는 가변형 설계를 반영한 곳도 점차 늘고 있다. 소비자의 취향에 따라 특정 공간을 응접실, 오디오실, 홈바 등으로 다양하게 활용하도록 한 곳도 나온다. 일부에서는 25평형 아파트를 소호(SOHO)형, 스튜디오형, 소가족형(방 2개), 기본형(방 3개) 등 네 가지로 제시해놓고 입주자가 나름대로 꾸며서 살도록 한 경우도 있었다.
아파트 기능은 정보기술(IT) 발전에 발 맞춰 나날이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갖추고 사이버아파트라는 이름으로 불렸던 수준을 뛰어넘어 집안의 가전제품을 집밖에서 조절할 수 있는 ‘홈 네트워크 시스템’을 갖춘 곳이 선보이고 있다. 일부 업체는 신선한 공기를 인공적으로 공급하는 산소방을 만들어 호평을 받기도 했다. 애들 뛰는 소리나 화장실 물 내리는 소리 등과 같은 불쾌한 소음을 없앤 아파트도 개발되고 있다.
조경(造景)의 고급화도 빼놓을 수 없다. 주차장을 모두 지하로 배치하고 아파트 단지에는 주민체육시설과 녹지공간만 배치한 곳이 적잖다. 또 인공실개천이나 호수 등을 조성, 환경친화적인 조경을 만드는 곳도 늘고 있다.
콘크리트로 빚은 성냥갑 같은 아파트 외관도 화려하게 바뀌고 있다. 야간조명을 해 건물을 꽃단장하는 곳도 있고, 외벽을 고성(古城)처럼 꾸미거나 아예 외벽을 호텔식 통유리로 만든 곳도 나오고 있다. 눈에 잘 띄고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갖추면 지역의 상징물로 인정받으면서 주변 집값을 주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마천루화(化)’ 경향도 눈에 띈다. 서울 도심에 들어서는 주상복합아파트들이 이미 69층높이로 건설된 데 이어 인천에서는 일반아파트를 37층 높이까지 올리려는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