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시절 전속 디자이너 올레그 카시니의 드레스를 입은 재클린 케네디/동아일보 자료사진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1992년 대통령 선거 때 내건 슬로건은 ‘한 명 값으로 두 명을’이었다. 한 명은 자신, 다른 한 명은 부인 힐러리 여사를 말한 것이었다. 제럴드 포드는 1976년 재선을 노리며 “베티의 남편을 대통령으로”라고 외쳤다. 존 F 케네디는 1961년 파리에서 드골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재클린 케네디의 파리 여행에 동행했던 남자입니다.”
대통령과 대통령부인은 ‘한 이불을 덮고 자는’ 사적인 관계다. 하지만 대통령부인은 하나의 공직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 자리의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식과 정도에 따라서는 대통령의 그것보다도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일부 대통령들은 대권을 염두에 두고 배우자를 정략적으로 선택했다는 평가도 받는다.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와 케네디, 린든 B 존슨, 클린턴 대통령이 그렇다. 김대중 대통령에게도 이희호 여사는 ‘아내’보다는 ‘동지’에 가까웠다.
힐러리 클린턴, 바버라 부시, 낸시 레이건, 로절린 카터 여사.(왼쪽부터)
대통령부인은 어떻게 영향력을 행사해 왔는가. 선출직도 임명직도 아닌 대통령부인에게 애국심과 재능을 발휘할 공적인 무대를 마련해 주어야 하는가.
한국의 대표적인 대통령부인을 꼽으라면 단연 육영수 여사다. 대통령부인 후보인 한인옥, 권양숙씨도 5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육 여사를 가장 닮고 싶다고 했다. 한씨는 “카리스마적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이미지를 육 여사가 부드러움으로 중화시켰다”고 평가했고 권씨는“단아하고 자애로운 육 여사의 이미지를 좋아하며 닮고 싶다”고 했다.
한국여성정치연구소가 1997년 전국의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76.2%는 가장 좋아하는 대통령부인으로 육 여사를 꼽았다. 이 때문에 “대통령부인 후보들은 육 여사의 콤플렉스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고 있다.
●백악관에 집무실 두고 국정참여
미국의 시장조사 및 컨설팅 기관인 해리스 폴은 지난해 7월 미국의 성인 남녀 1246명을 대상으로 역대 대통령부인들에 대한 선호도 조사를 했다. 대상은 재클린 케네디부터 로라 부시까지 1960년대 이후 활동한 전현직 대통령부인 9명이었다. 해리스 폴은 ‘최고의 대통령부인’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부인’ ‘미국 여성의 역할 모델을 제시한 대통령부인’ ‘지적인 대통령부인’을 꼽으라는 4가지 질문을 던졌다.
‘최고의 대통령부인’은 재클린 케네디였다. 응답자의 50%가 그녀를 역대 최고의 대통령부인으로 꼽았다. 다음이 낸시 레이건으로 11%, 바버라 부시와 힐러리 클린턴이라고 답한 사람은 각각 10%였다.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부인’으로 응답자의 42%는 재클린을 꼽았다. 다음은 힐러리(14%)-낸시와 바버라(13%)-로절린 카터(4%) 등의 순이었다.
‘가장 뛰어난 역할 모델을 제시한 대통령부인’으로도 재클린(30%)이 1위로 꼽혔고 이어 바버라(21%)-힐러리(16%)-낸시(10%)-로절린(6%)-로라 부시(5%) 순이었다. ‘가장 지적인 대통령부인’으로는 힐러리(45%)가 1위로 평가됐고 2위 재클린(12%), 3위 낸시(10%), 4위 바버라(8%)였다.
지적이라는 것은 대에게는 양날의 칼과도 같았다. 힐러리 여사는 가장 지적인 대으로 꼽혔지만 전체적으로는 다른 대보다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해리스 폴이 조사 대상을 그 전 세대까지로 넓혀 놓았다면 엘리너 루스벨트가 재클린 여사를 제치고 최고의 대통령부인으로 꼽혔을지 모른다. 미국의 역사가들은 엘리너 여사를 새로운 대통령부인상을 제시한 인물로 평가한다. 그녀는 대통령의 아내로서 정부 정책에 지지를 호소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고 뛰어난 사회운동가로서 독자적인 행보를 했다. 엘리너 여사의 집무실에는 2명의 전담 비서가 있었지만 필요할 때는 정부 공무원들의 손을 빌리기도 해 백악관 참모들과 마찰을 빚었다.
재클린 여사는 엘리너 여사와 달리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다. 타고난 심미안으로 백악관을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눈부신 저택으로 바꾸어 놓았다. 빼어난 미모와 교양, 유창한 외국어 실력으로 나라 밖에서는 대통령보다 더 주목받는 외교 사절 역할을 했다. 유권자들은 백악관의 교양있고 아름다운 안주인을 보며 대리만족을 느꼈다.
재클린 여사는 대통령부인으로서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하기 위해 언론 전담 비서를 포함, 모두 40명의 직원을 대통령부인 집무실에 두었다. 그 이후 대통령부인 집무실의 규모는 줄었지만 영향력은 더욱 커져 국정 개입에까지 이어졌다.
로절린 여사는 내각회의에 참석했다. 중남미 특별 대사로 남아메리카 7개국을 돌며 인권 옹호와 핵 동결을 호소했고 정신건강 관련법 제정을 위해 대통령부인으로는 처음으로 의회 의원들 앞에 서서 법 제정의 의의를 역설했다. 로절린 여사를 ‘여자 대통령(Mrs. President)’이라고 비아냥거렸던 사람들은 그녀가 1978년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에 중동 지도자들을 초청해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로절린 여사의 ‘재임’ 기간인 1978년 미국 의회는 대통령부인이 독자적으로 임무를 수행할 때 정부 예산과 인력을 쓸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낸시 여사는 아예 직업란에 ‘퍼스트레이디’라고 썼다. 보도자료를 낼 때도 ‘대통령부인 집무실’이라는 문구를 넣었다. 힐러리 여사는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웨스트윙에 대통령부인의 집무실을 마련한 최초의 대통령부인이었다. 클린턴 대통령은 말했다. “우리는 공동으로 일을 해 나갑니다(We are a partnership).”
●지위공식화 국내서도 논의 필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의 헌법과 법률에는 대통령부인의 역할이나 책임은 물론 존재 자체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이 없다. 대통령부인의 집무실 역할을 하는 것이 청와대의 제2부속실이다. 현재 부속실에는 1급 상당의 실장과 행정관 등 5명과 계약직으로 전담 미용사가 소속돼 있다. 대통령부인의 일정을 챙기고 의전을 담당하는 정도일 뿐 미국의 대통령부인 집무실과는 규모와 기능이 크게 다르다.
그러나 ‘공적인 존재’로서 대통령부인에 대한 인정은 이처럼 미미한데도 불구하고 대통령부인을 둘러싼 잡음은 끊이지 않았다. 이순자 여사는 자신이 회장을 맡았던 새세대육영회와 새세대심장재단을 통해 기금 명목으로 기업들로부터 422억원을 거두었다. 김옥숙 여사는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 야당으로부터 ‘6공 비자금의 또다른 전주(錢主)’라는 공세에 시달렸고 김 여사의 고종사촌인 박철언씨는 6공 때 ‘황태자’로 불리며 막강한 권력을 행사했다. 이희호 여사는 그 자신의 민주화운동, 여성운동 경력 등으로 미루어 전임자와는 다른 대통령부인이 되리라는 기대를 모았지만 옷로비 의혹, 친인척 비리와 관련된 구설에 휘말렸다.
고려대 함성득 교수는 “미국처럼 대통령부인의 지위를 제도화해야 밀실에서의 석연찮은 뒷거래 관행도 사라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김원홍 한국여성개발원 법 정치부장도 “대통령부인만을 담당하는 독자 인력과 예산을 확보하고 자체 홈페이지를 통해 활동 내용을 투명하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지만“그러나 이는 대통령부인 스스로 전문성이나 능력을 인정 받은 경우를 전제로 하는 것”이라고 단서를 달았다.
이정옥 대구가톨릭대 교수는 “대통령부인 지위의 공식화에는 찬성하지만 그것이 전문직으로 홀로서기를 지향하는 여성들의 사기를 꺾어서는 안 된다. 무엇보다도 더 이상 부인들의 연줄이 비공식적 청탁망이 되어선 안 된다는 시대적 과제를 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참고자료〓함성득 교수의 ‘영부인론’, 케이티 마튼의 ‘숨은 권력자, 퍼스트레이디’, The Social Science Journal 37권의 ‘퍼스트레이디의 역할과 집무실의 진화’)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