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도 좋아'의 박치규 이순예 커플
“지금 조 박사를 좋아하는 마음에는 그게 없었다. 연애감정은 젊었을 때와 조금도 다르지 않은데 정욕이 비어 있었다. 정서로 충족되는 연애는 겉멋에 불과했다. …정욕에 눈을 가리지 않으니까 너무도 빠안히 모든 것이 보였다….”(박완서의 ‘마른꽃’중에서)
인생을 거의 다 살아버린 나이에도 열정이 찾아올까. 소설 ‘마른꽃’의 주인공은 열정이 없는 늘그막에 낯선 상대를 사랑하기는 불가능하다고 포기하지만, 70대의 사랑을 그린 영화 ‘죽어도 좋아’의 주연 박치규(73) 이순예씨(71)는 정 반대의 지점에 서있는 ‘행복한’ 커플이다.
“젊을 때만 재미있게 살고 나이 먹으면 그런 게 다 필요없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니까. 혼자산 지 3년쯤 되니까 나도 사랑받고 싶다는 마음이 생겨. 자식들에게 그런 말은 못하지. 아마 딸이 ‘엄마도 좋은 사람 찾아가라’고 등 떠밀지 않았으면 엄두도 못냈을 거야.”(이순예)
노골적 성 묘사로 극장 개봉의 길이 막혀 논란이 됐던 ‘죽어도 좋아’는 문제 장면을 어둡게 처리한 뒤 ‘18세이상 관람가’를 받아 12월 6일 개봉을 앞두고 있다. 23일 폐막된 부산국제영화제에서는 관객상, 국제영화평론가협회상, 특별언급상 등 3개의 상을 받았다. ‘이제 개봉되는데 민망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두 사람은 입을 모아 “왜? 좋기만 하지. 우리는 ‘진실’만 보여줬기 때문에 부끄러울 게 없다”고 말한다.
3,4년 전 각각 배우자와 사별한 두 사람은 2년 전 한 노인복지관에서 처음 만났다. 3월14일 같이 살기 시작했다고, 날짜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모습이 영락없는 ‘애인’들 같다. 다큐멘터리에 더 가까운 이 영화에서 두 사람은 사랑싸움에서 잠자리 장면까지 실제 삶을 그대로 연기했다.
이들이 ‘소재주의’의 희생양이 되는 건 아닐까, 더 이상 ‘관계’가 불가능해지면 마음도 시들지 않을까, 의심이 가득한 얼굴로 질문을 던지는 기자에게 이 노년 커플은 인생의 비밀을 알려주듯 한마디씩 했다.
“사람 인(人)자가 서로 받쳐주는 글자로 만들어진 것 마냥 사람은 늘 누군가에게 의지하고 살 수 밖에 없어. 혼자 사는 건 사는 게 아냐. 좋은 세월을 왜 허망하게 흘려 보내. 나중에 후회하지 않도록 즐기는 게 잘 사는 거라니까.”(박치규)
“청춘은 지나면 다시 안오고 오늘은 한번 가면 절대로 다시 안와. 인생이라는 거 살아보니까 허무한 거예요. 능력있고 힘있을 때 즐겨야지, 나중에 힘 빠지고 지치면 어쩌나 그런 걱정을 왜 해.”(이순예)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