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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보기 세상읽기]辭典에 지식의 길이 있다

입력 | 2002-11-29 17:05:00

복거일


수능시험도 끝났으니, 조금 지나면 신입생들은 대학에서의 공부를 위해 여러 가지 준비들을 할 것이다. 고등학교에선 주어진 물음에 대한 답을 다른 사람이 가르쳐주었다. 대학에선 그런 답을 학생이 스스로 찾아야 한다. 그 일에선 좋은 참고서(Reference Book)를 갖추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이 조언은 실은 과학소설 작가 아이작 아시모프가 한 것이다. 그는 생전에 500권이 넘는 책을 썼는데 좋은 참고서를 가까이 둔 것이 글을 쓰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했다.

참고서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것은 물론 조선어사전이다. 대학에 들어가면 휴대용 국어사전과 함께 두툼한 탁상용 사전을 갖추어야 한다. 인문학을 전공하려는 젊은이들에겐 고어 사전을 권하고 싶다. 유창돈의 ‘이조어사전’과 같은 고어사전을 뒤적이다 보면 얻는 것이 많다. 자전(字典)으로는 민중서관의 ‘한한대자전’이 실용적이다.

영어가 워낙 중요하므로 영어사전은 여러권 갖추는 것이 바람직하다. 휴대용 영영한사전과 탁상용 영한사전은 기본 장비들인데 영영한사전으로는 ‘혼비 영영한사전’이 좋다. 야심찬 젊은이들은 실용적인 ‘웹스터 영어사전’을 갖출 만하고, 영어 실력이 늘면서 유어집(Thesaurus)의 필요성도 느낄 것이다. 얄팍한 영어사전은 여학생들에겐 우아한 장신구 노릇도 할 터인데 ‘옥스퍼드 키스(Oxford Keys)’를 추천하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나온 백과사전들 가운데 하나를 갖추고 나면 ‘브리태니커’에 눈길을 주어야 한다. CD보다는 책이 좋고, 오래 전에 나온 것일수록 좋다. 오래 전에 나온 판일수록 항목들이 적어서 기사 내용이 충실하다. 최근 기사는 계속 보완되는 전자백과사전으로 찾는 것이 좋은데,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엔카르타(Encarta)’는 평판이 높다. (아쉽게도 이 멋진 백과사전은 우리나라에선 유통되지 않으므로 미국에 사는 친지들에게 부탁해야 한다)

다음엔 전공 분야의 백과사전 차례다. 자연과학도들에겐 ‘맥그로힐 과학기술 백과사전(McGraw-Hill Encyclopedia of Science and Technology)’을, 인문학도와 사회과학도에겐 맥밀리언사의 ‘국제 사회과학 백과사전(International Encyclopedia of the Social Sciences)’을 권하고 싶다. 이런 백과사전들은 물론 학교 도서관에 비치돼 있지만, 무릇 책은 중요한 곳에선 밑줄을 그을 수 있어야 온전히 자기 것이 된다.

글을 쓰는 사람들에게 무척 성가신 것이 외국사람의 이름이나 지명과 같은 고유명사의 발음이다. 그래서 기회가 닿으면, 인물사전과 지리사전을 갖추는 것이 좋다. 인문학도와 사회과학도는 갖가지 연표를 모아두는 것도 긴요하다. 좋은 연표는 글 쓰기의 속도를 크게 높여준다.

좋은 참고서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늘 지적 즐거움을 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잘 쓸 줄 아는 사람들에겐 뜻밖의 선물도 준다. 그런 선물들 가운데 하나는 스스로 좋은 물음을 던질 줄 아는 능력이다.

입시 위주의 교육을 받은 터라 우리 학생들은 모두 주어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일이 가장 중요한 지적 활동이라는 생각을 지니고 있다. 창조적 노력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주어진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능력이 아니라 스스로 물음을 던지는 능력이다. 풍요로운 결과를 약속하는 주제를 고르는 일에서부터 새로운 각도에서 문제를 살피는 일에 이르기까지, 창조적 노력의 모든 단계들을 떠받치는 것은 스스로 물음을 던질 수 있는 능력이다. 자료가 체계적으로 집적된 참고서는 그런 물음을 찾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것이다.

복거일 소설가·사회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