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어윤태 사장님께 넋두리 한 자 올려봅니다. 첫 사랑을 잊지 못하듯 학창시절의 은사는 평생 기억에 남습니다.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냐구요. 사장님께서 얼마전 잘랐던 김성근감독 말입니다. 그는 저에게 야구뿐 아니라 인생의 스승이었습니다.
김감독이 태평양 시절에 그를 처음 봤습니다. 정말 독특했죠. 한국말도 서툰데다 글은 꼭 일본어로 썼습니다. 타순을 짜기 위해 왼손으로 히라가나를 깨알같이 써내려가고 있는 모습이란….
그는 늘 구단과의 불협화음에 시달렸습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저로선 이해가 안될 정도였죠. 조금만 물러서면 될텐데 말입니다. 선수단 운영에 관한 한 지독스럽게 고집을 부렸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가 태평양부터만 따져도 4번이나 중도 해임된 결정적인 원인이었는데도 말입니다.
사장님도 잘 아시다시피 김감독에겐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그럴 만도 했죠. 일본에서 고교를 졸업한 후 오로지 야구가 좋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지만 그를 따뜻하게 받아주는 사람들은 드물었습니다. 선배인 김영덕씨 등과는 달리 선수로서도 대성하지도 못했습니다.
이런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었겠습니까. 오로지 야구뿐이었습니다. 지극히 내성적인 성격은 그를 더욱 한쪽만 바라보게 채찍질했죠. 하지만 김감독이 야구만 아는 외골수는 결코 아니었습니다. 단지 표현이 서툴렀을 뿐 오히려 그 반대였죠.
한국의 야구 감독중에 누가 새파란 초보 기자를 앉혀놓고 야구 이야기로 그 많은 밤을 하얗게 샐 수 있다는 말입니까. 김성근사단으로 불리는 코치와 선수들도 한 목소리입니다. 그에게서 정작 야구보다는 인생을 배웠다고 하더군요.
이렇게 쓰고 보니 일방적으로 김성근 감독 해임을 매도한 것처럼 비춰질 지도 모르겠습니다. 안 그래도 팬들의 비난 여론이 들끓고 있는 마당인데 말입니다. 사장님께서도 가슴 속에 묻어둔 얘기가 많겠지요. 저를 이해시키기 위해 그 귀중한 시간도 밤새 내주셨을테구요.
저는 사장님을 경영인으로, 또 인생의 선배로 알고 있습니다. 3년 연속 100만 관중시대를 열었던 그 추진력과 치밀함, 신바람 야구의 중심에 섰던 그 솔직함과 따스함을 기억합니다. ‘김성근 야구엔 LG의 미래가 없다’는 말 또한 나름대로의 까닭이 있겠죠.
아무쪼록 빨리 이번 사태가 진정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LG구단에게도, 그리고 LG를 아끼는 팬들에게도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장환수기자 zangpab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