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28일 폭로한 국정원 도청의혹자료에 대해 국정원은 “도청한 사실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제시한 도청의혹자료는 3월에, 서울 여의도 내에서, 주로 정치인 및 기자들이 통화한 내용을 집중적으로 기록한 것이어서 누군가가 명백한 목적을 갖고, 일정한 지역내에서, 지속적으로 도청을 했다는 사실을 짐작케 한다.
▽진짜인가, 가짜인가〓한나라당이 공개한 문건에 등장하는 사람은 △국회의원 24명 △기자 8명 △언론사 사장 2명 등 모두 39명이다. 이중 한나라당 의원 상당수와 기자들은 “문건에 나타난 날짜에 통화를 한적이 있으며 내용도 대체로 맞다”고 증언했다.
통화내용이 사실이고, 도청을 통해 작성한 문건이 아니라면 누군가 통화를 할 때 옆에서 듣거나 통화를 했다는 사실과 그 내용을 제3자로부터 전해 들어야 한다. 그러나 자료의 방대함과 내용의 정확성으로 볼 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또한 최근에 갑자기 ‘문건’이 필요해 사후에 조작했다고 가정해도 9개월이나 지난 통화내용과 날짜를 정확히 되살려 만든다는 것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누군가가 도청을 했다고 추정할 수밖에 없다.
▽도청장소와 방법은〓문건의 내용이 맞다고 확인한 의원들과 기자들의 통화장소는 대부분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한나라당 중앙당사 당직자실 및 3층 기자실, 민주당사 2층 기자실이었다고 말했다. 3동의 건물은 모두 반경 500m이내에 들어있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 지역을 타깃으로 삼아 집중적인 도청을 했고, 도청장소도 의원회관과 당사, 이들 건물 주변이나 관할 전화국에서 도청했을 가능성이 높다.
유선전화 도청은 전화선이나 교환기의 단자를 이용하는 것이 전통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이 방법은 발각될 가능성이 높아 요즘은 거의 쓰지 않고 최근에는 무선방식을 주로 이용하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하고 있다. 유선전화 잭에 초소형 무선송신기를 장치해 통화내용을 외부로 송출토록 하고, 송출된 내용을 부근에서 감청하는 것이 무선방식이다.
이 방법이 아니라면 유선전화선이 반드시 거쳐나가는 빌딩내 통신실이나 전화선이 집결되는 관할 전화국에서 도청할 수도 있다.
▽휴대전화도 도청되나〓국정원은 휴대전화는 도청을 못한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29일 박관용(朴寬用) 국회의장이 “분명히 휴대전화로 했는데 도청을 당했다”고 밝힘으로써 휴대전화의 도청가능성도 점차 힘을 얻어가고 있다.
휴대전화를 도청했다면 차량탑재용 도청장비를 이용했을 가능성이 크다(본보 10월 25일자 A1·3면). 이 장비는 반경 1㎞이내의 모든 휴대전화 통화내용을 들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휴대전화 도청장비는 대상자의 전화번호를 입력해 두면 해당 전화가 발신, 또는 수신할 때 자동감지하도록 되어 있다. 따라서 이번에 공개된 문건중 휴대전화로 한 것이 포함돼 있다면 누군가가 이들 장비를 이용해 여의도에서 도청을 했다는 증거가 된다.
▽누가 했나〓현재 국가기관중 도감청을 하고 있는 곳은 국정원 검찰 경찰 기무사 등이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이 정치권을 집중적으로 도청했을 가능성은 낮다. 군의 보안을 책임지고 있는 기무사가 했을 가능성도 적다.
따라서 언제나 국정원이 의심을 받고 있다. 한나라당도 이번 문건을 국정원 내부제보자로부터 입수했다고 밝히고 있다.
신건(辛建) 국정원장은 29일 “우리는 안했다”며 사설팀이 했을 가능성을 언급했다. 그러나 영세한 사설업체가 이번에 공개된 것처럼 상당수의 인물을, 짧은 기간내에, 동시 다발적으로 도청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종훈기자 taylor5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