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쿵 쿵 따-쿵 쿵 따- 국민 코미디언 강호동입니다.” 넉살좋고 입담좋은 데다 능청스럽기까지 한 왕년의 천하장사 씨름선수 강호동. 코미디언으로 변신한 지금도 두둑한 뱃심과 승부근성은 여전하다. 강병기기자
▼씨름 떠난지 10년만에 스타
10여년전 천하장사 강호동(32)은 ‘모래판의 악동’소리를 들었다. 상대의 신경을 긁는 유들유들한 웃음, 쉴 새 없이 중얼거리는 입. 그 뿐인가. 이겼을 땐 허공을 향해 빈 주먹질을 하며 뜻 모를 괴성을 질러댔다. 이러니 상대 선수는 ‘뚜껑’이 열릴 수 밖에…. 오죽하면 당시 고참급 모 선수가 “어린 녀석이 어찌나 영악하고 얄밉던지 뺨이라도 한번 갈겨 주고 싶었다”라고 했을까.
열여덟살이던 88년 프로 삿바를 찬 강호동이 모래판에서 활동한 기간은 딱 3년6개월. 천하장사 5회, 백두장사 7회. ‘모래판의 황제’ 이만기의 7년 독주를 끝장낸 주인공이 바로 그였다.
그러나 그는 스물두살 되던 92년 봄 “새로운 인생을 설계해 보고 싶다. 10년후 내 말 뜻을 알게 될 것”이라며 바람처럼 모래판을 떠났다. 올해가 바로 그 10년째 되는 해.####씨름선수와 코미디언 사이 지난달 말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코미디언’ 강호동은 특유의 질그릇 깨지는 목소리로 “독감과 씨름중”이라며 씨익 웃었다.
“아니, 천하장사도 감기에 걸리나요?”
“씨름은 반납한지 오래됐고 이젠 코미디언이잖아요.”
MBC 여운혁PD 말로는 강호동은 이경규 신동엽 등과 함께 톱클래스에 드는 개그맨. 프로그램 제작때 PD보다 더 열심히 뛰는 사람은 강호동뿐이라고 한다.
“요즘도 혼자서 중얼거리나요?”
“어떻게 알았습니까? 일종의 자기최면이라고 할 수 있죠. 방송하기 전엔 씨름경기 때처럼 늘 긴장으로 몸이 굳어지거든요. 그럴 때 ‘강호동 넌 할수 있어’‘해낼 거야’‘문제 없어’하고 중얼거리면 곧 괜찮아집니다.”
“씨름과 코미디라는 전혀 다른 두 분야에서 정상에 오르기란 쉽지 않았을텐데…”
“어디서든 1등과 2등 차이는 간단합니다. 씨름에서 천하장사는 꼭 필요한 순간 힘을 집중해서 쓰는 선수이고 2등은 경기내내 힘을 쓰는 선수입니다. 코미디도 똑같아요.”
90년 7월 제19회천하장사씨름대회에서 남동하를 3-1로 꺾고 ‘천하장사 2연패’를 한뒤 포효하고 있는 강호동.동아일보 자료사진
이만기는 강호동의 마산상고 7년선배. 강호동은 프로씨름판에서 유난히 이만기에 강했다. 상대전적 4승1패. 어떻게 ‘모래판의 황제’를 꺾었을까.
“이만기선배와 처음 맞붙었을 때 두려웠습니다. 그 때 번개같이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지요. 대선수일수록 나처럼 대책없는 풋내기가 부담스러우리라는 것이었죠. 그러자 두려움이 사라졌습니다.”
강호동은 씨름이든 코미디언이든 승부를 결정하는 것은 자신감이라고 했다.
씨름경기에서 자신감이 넘치면 연습도 안해본 기술이 저절로 나와 상대를 제압하는 것처럼 방송에서도 대본에 없는 말이 자기도 모르게 뛰어나와 히트치는 경우도 있다는 것.
‘행님아, 반갑습니데이∼’ ‘예쁘게 봐주이소’가 바로 그렇다.
강호동은 열세살때부터 천하장사가 돼서 포효하는 꿈만 꿨다. 그랬더니 6년 후 꿈 속의 장면이 그대로 재현됐다.
요즘은 돈도 아니고 씨름도 아니고 오직 ‘광대’가 되는 꿈을 머리에 쥐가 나도록 꿔댄다.
“맨살을 맞대고 시작하는 운동은 씨름밖에 없습니다. 샅바만 잡으면 상대가 어디가 약하고 강한지 손을 통해 금방 알 수 있어요. 방송도 마이크를 잡으면 그날의 핵심이 뭔지 바로 머리에 들어옵니다.”
강호동에게 방송은 ‘팀워크’다. 웃음판에도 색깔이 맞는 사람이 있다. 방청객들이 “와아∼” 하고 웃어주면 천하장사가 안 부럽지만 반응이 썰렁할 때면 등에 식은땀이 난다는 것. 영리하고 순발력이 뛰어나기로 정평이 난 강호동이지만 “방송은 씨름보다 훨씬 힘들다”는 게 그의 하소연이다.
그는 요즘 담배와 8개월째 씨름중. 며칠 잘 참다가도 열 받으면 다시 무는 통에 도로아미타불이 되고 만다. 술은 천하장사급. LG씨름단 이기수코치의 말로는 앉은 자리에서 소주 너댓병은 보통이고 폭탄주든 뭐든 아무거나 OK. ‘청탁불문’의 ‘두주불사형’이 바로 그를 두고 한 말이란다.
운동도 만능. 전에는 탁구 테니스가 수준급이었지만 요즘엔 스쿼시에 빠져있다.
강호동에게 물었다.
“스승인 김학룡감독(67)에게 자동차(렉스톤) 한 대 사 드렸다던데…”
“그런걸 뭘…. 그 분은 나에게 아버지 같은 분이거든요.”
“결혼은?” “아직….” “돈은 얼마나 벌었나” “쓸 만큼….” “제일 소중한 것은?” “동료애.” “그런 동료들을 꼽는다면….” “이경규 이휘재 윤정수 유재석….”
강호동은 가방끈이 짧다. 마산상고 졸업이 학력의 전부다. 그렇지만 대학 졸업장에 대한 미련은 없다.
“어차피 몸 하나로 살아온 인생이 아닙니까. 가방끈이 짧아도 온 몸으로 부딪치다 보면 저절로 사는 지혜가 생깁니다. 쿵 쿵 따∼쿵 쿵 따∼”.
김화성기자 mar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