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5일부터 13일까지 미국 뉴욕에서 있었던 가을 경매를 참관하고 돌아왔다.
이 경매는 매년 세계 빅3 경매사인 소더비, 크리스티, 필립스가 11월 초부터 거의 한달 간에 걸쳐서 진행하는 것으로 지구촌 각지의 내로라하는 화상과 컬렉터들이 모여 한 해의 미술시장을 마감하고 앞으로의 동향을 가늠해 보는 중요한 행사다.
출장 길에 오르기 전 세계적인 경기 부진의 여파로 이번에 많은 작품들이 쏟아져 나왔고 미술시장 역시 침체의 길로 들어설 것이라는 비관적인 내외신 기사를 접했다. 필자는 세계적인 실물경제 침체에도 불구하고 미술시장은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논조를 펴왔기 때문에 상당히 긴장했다.
5일 뉴욕에 들어서자 좋지 않은 소식이 나를 맞았다. 하루 전에 있었던 필립스의 인상파, 근대미술(Impressionist, Modern art) 경매가 죽을 쑨 것이다. 출품작 44점 중 절반에도 못 미치는 19점만이 낙찰됐고 낙찰가액도 700만달러에 불과했다. 그들의 표현대로 가히 ‘참사(disaster)’라 할 만했다.
그러나 이런 참사는 뒤늦게 시장에 뛰어들어 공격적인 마케팅 전략을 펼쳐오던 필립스만의 사정이었다. 도착 당일(5일)부터 13일까지 필자가 참관한 소더비, 크리스티의 경매는 인상파, 근대, 현대 미술 모두 성황리에 끝났고 필립스조차도 현대미술에서는 예상 밖의 호조를 보였다.
경매에 참여했던 전 세계 미술 관계자들이 표현했던 것처럼 미술시장은 역시 강(strong)하고 건재(healthy)했다.
필자는 이번 경매에서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미술시장의 변화를 발견했다.
첫째, 소더비 공동 회장인 찰스 모펫의 말처럼 미술품을 선별하는 컬렉터들이 작품의 질을 훨씬 더 중시하는 쪽으로 신중해졌다. 이는 특히 인상파 작품에서 두드러졌다. 과거 80년대 후반에서 90년까지 일본인들이 인상파 작품이라면 질을 따지지 않고 가격에 관계없이 사들여 흐려놨던 물이 많이 정화됐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이번 경매에 모네의 ‘수련’이 소더비와 크리스티에 각각 한 점씩 출품됐는데 소더비의 작품(88.9×92.1㎝, 1906년)이 1870만달러에 팔린 데 비해 크리스티의 작품(130×200㎝, 1919년)은 더 큰 사이즈인 데도 불구하고 800만달러 언저리에서 유찰됐다. 이 경매는 고흐, 르누아르의 작품 등으로 세계 최고가 경매기록 보유자인 노련한 경매사 버지가 담당했는 데도 결과는 씁쓸하게 나왔다.(다음호에 계속)
김순응 서울옥션대표 soonung@seoulauction.com